크리스마스 이브는 무엇일까?

by 생각의정원

크리스마스 이브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다. 그것은 크리스마스 바로 전날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브가 본편보다 더 특별하다. 왜일까?


스물일곱 살 겨울, 나는 혼자 서울 홍대 근처의 작은 바에 앉아 있었다. 12월 24일 밤 아홉 시쯤. 거리는 커플들로 붐볐고, 바 안은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로 조용했다. 바텐더가 위스키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브는 기다림의 시간이죠." 그는 웃었다. "기다림이 때로는 도착보다 더 아름답거든요."


생각해보면 그랬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아직'의 시간이다. 아직 선물을 뜯지 않았고, 아직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직 실망하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간. 상자를 열기 전의 떨림. 문을 열기 전의 두근거림.


어렸을 때 나는 이브가 지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기다림이 끝나버리니까. 그리고 끝나면 일 년을 또 기다려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기대가 실현보다 더 달콤할 수 있다는 것을.


이브에는 특별한 마법이 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자정까지 몇 시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조금 더 절실하게 만든다. 마치 영화의 클라이맥스 직전처럼.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


내 친구 M은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혼자 산책을 한다고 했다. "왜?" 내가 묻자 그녀가 말했다. "이브는 제일 정직한 날이거든. 사람들이 가장 솔직해지는 밤이야.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외로움을 인정하거나, 사랑을 고백하거나. 모두가 자기 감정 앞에 서게 되는 밤."


맞는 말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거울 같은 날이다. 우리는 그 날 우리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혹은 누구와 함께 있지 않은지를 분명하게 본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잃었는지를 느낀다.


물론 이브가 모두에게 달콤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장 외로운 밤이기도 하다. 온 세상이 축제처럼 보일 때, 혼자라는 사실은 더 크게 느껴진다. 거리의 불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 진하다.


하지만 그것도 이브의 일부다. 이브는 완벽한 행복의 시간이 아니라, 모든 감정이 증폭되는 시간이다.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도, 희망도. 모든 것이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선명하다.


나는 이제 이브를 다르게 본다. 그것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시간이다. 눈이 내리는 걸 보거나,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혹은 그냥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거나.


크리스마스 이브는 결국, 하루 전이라는 이름의 오늘이다. 내일을 기다리지만, 사실은 오늘을 사는 시간.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미 여기에 있는 순간.


그리고 자정이 되면, 이브는 사라진다. 크리스마스가 오고, 선물을 열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가 지나간다. 하지만 그 다음 해, 우리는 또다시 이브를 기다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완성된 순간이 아니라,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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