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에 대하여

by 생각의정원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처음 제대로 이해한 것은 서른두 살 무렵이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심리학 용어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트라우마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 속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내 친구 K는 스물세 살 때 작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십 년이 넘도록, 그는 차 뒷좌석에만 앉는다. 조수석에 앉으면 숨이 막힌다고 했다. 발을 디딜 곳이 없는 것 같다고. "이상하지?" 그가 웃으며 말했다. "머리로는 괜찮다는 걸 아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어."


그렇다. 트라우마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몸의 기억이고, 세포의 기억이다. 당신이 아무리 "이제 괜찮아, 지나간 일이야"라고 말해도, 몸은 여전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지금도 가끔 그렇다. 이유를 몰랐는데,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이해했다. 내가 네 살 때, 정전이 된 밤에 혼자 방에 갇혀 한 시간 동안 울었다고 한다. 나는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몸은 기억한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느꼈던 그 무력함을.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친다. 한 번 깨진 신뢰는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유리잔처럼, 깨진 조각을 모아 붙여도 금은 남는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 금 자체가 때로는 아름다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일본에는 킨츠기(金継ぎ)라는 전통이 있다.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붙이는 기법이다. 금으로 이어진 그릇은 깨지기 전보다 더 귀해진다. 상처가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사람을 만든다.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것은 그것을 잊는다는 뜻이 아니다.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대신 우리는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트라우마를 우리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되, 그것이 우리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 나는 가끔 재즈 바에 간다. 조명이 어둡고 음악이 흐르는 곳. 예전에는 어두운 곳이 불편했지만, 이제는 그 어둠 속에서 평화를 느낀다. 어둠이 사라진 게 아니다. 내가 변한 것이다. 어둠이 더 이상 위협이 아니라, 그저 낮과 다른 시간의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은 결국 '이야기'라고. 일어난 일을 말로 풀어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혼돈을 서사로 바꾸는 작업.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그것인지 모른다.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하기 위해서.


트라우마는 우리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더 깊은 인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안다. 어둠을 경험한 사람은 빛의 소중함을 안다. 상처받은 적 없는 사람은 아무도 치유할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의 트라우마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살아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당신이 충분히 용감했기 때문에, 그 순간을 견뎌냈기 때문에 남은 흔적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당신은 그 상처가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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