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커피를 내린다.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이고, 천천히 드리퍼에 물을 붓는다. 그 시간은 대략 3분 정도 걸린다. 그 3분 동안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생각이 밀려든다. 어제 있었던 일, 오늘 해야 할 일, 작년 여름의 어떤 장면, 십 년 전 누군가가 했던 말. 마치 생각이라는 것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옛날 어느 선사가 제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생각을 멈출 수 있는가?" 제자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러자 선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생각을 관찰할 수는 있는가?"
나는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는 것. 마치 강물을 보듯이,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듯이. 생각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 같지만, 동시에 저절로 생겨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생각을 소유하는 걸까, 아니면 생각이 나를 거쳐 지나가는 걸까.
작년 가을, 나는 작은 사찰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 노스님을 만났다. 우리는 마당에 앉아 차를 마셨다. 노스님은 내게 물었다. "마음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가슴을 가리켰다. 노스님은 웃었다. "마음은 장소가 아닙니다. 마음은 활동입니다."
그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마음은 활동이다. 즉, 생각한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의 증거가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라는 뜻이 아닐까.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 방식이다.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불행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때였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거나. 반대로 행복했던 순간들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했던 때였다. 커피 향을 맡을 때, 빗소리를 들을 때, 누군가의 웃음을 볼 때.
생각하는 마음이 문제가 아니다. 생각에 붙잡히는 마음이 문제다. 생각을 강물처럼 흘려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생각은 오고 가지만, 생각을 바라보는 그 무엇은 언제나 고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수없이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 생각들을 붙잡지 않으려 한다. 그저 흐르게 둔다. 마치 커피를 내릴 때 물이 필터를 통과하듯이. 물은 지나가고, 향은 남는다.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수많은 생각이 지나가고, 그 속에서 무언가가 남는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낸 흔적이고, 우리가 배운 지혜다. 생각하는 마음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에 휩쓸리지 않을 뿐이다.
커피가 다 내려졌다. 나는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쓰면서도 달콤하다. 생각도 그렇다. 때로는 쓰고 때로는 달콤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음미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지나보낼 줄 아는 용기다.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흘려보낸다. 그것이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