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2025년의 마지막 달.
창밖을 본다. 겨울 나무들이 서 있다.
앙상한 가지들.
하지만 죽은 게 아니다.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봄을 위해.
한 해가 지나간다는 건 이상한 느낌이다. 365일이라는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돌이켜보면 순식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먼 옛날부터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1월의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새해 첫날, 나는 특별한 다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기로 했다. 잘 살아내기로 했다.
2월은 추웠다. 3월은 조금 따뜻해졌다. 4월에는 벚꽃이 피었다. 5월에는 비가 많이 왔다. 6월은 덥기 시작했다. 7월과 8월은 더웠다. 9월은 다시 선선해졌다. 10월은 좋았다. 11월은 쓸쓸했다. 그리고 지금은 12월이다.
계절은 돌고 돈다. 매년 같은 순서로.
올해 나는 무엇을 했나. 특별한 일을 했나. 대단한 성취를 이뤘나.
아니다. 별로 없다.
그냥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고, 잠을 잤다.
어떤 날은 좋았고, 어떤 날은 나빴다. 어떤 날은 의미 있는 것 같았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게 삶이다.
3월쯤이었나. 아이가 밤에 자주 깼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교대로 아이를 안았다. 새벽 세시, 네시. 피곤했다. 하지만 아이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것도 지나갈 것이라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4월은 후쿠오카 가족 여행으로 일본의 봄을 느끼고 왔다.
언제나 처럼 다시 가고 싶은건,
낮선 곳을 가족과 함께하고 추억을 쌓는다는 의미로 가족이 단단해지는 것 같다.
7월에는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5년 만이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옛날 이야기, 요즘 이야기. 친구는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인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또 보자"고 말했지만, 언제 볼지는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8월에는 아내와 싸웠다. 사소한 일이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 그리고 침묵했다. 몇 시간 후, 아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밥 먹을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특별한 화해의 말은 없었다. 그냥 함께 밥을 먹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9월에는 책을 한 권 다 읽었다. 오래 걸렸다. 두꺼운 책이었다. 매일 조금씩 읽었다. 아이가 잠든 후, 거실 소파에 앉아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이상한 허전함이 왔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의 그런 느낌.
10월 어느 주말 오후, 우리는 세 식구가 함께 공원에 갔다. 아이는 뛰어다녔다.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뛰었다. 아내와 나는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 "피곤하다"고 아내가 말했다. 나도 피곤했다. 육아는 체력을 많이 요구한다. 하루가 끝나면 녹초가 된다. 하지만 아이가 웃으며 우리에게 달려올 때, 그 피곤함은 잠시 잊혀진다.
"그래도 괜찮지?" 내가 물었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
우리는 행복한 가족이다. 완벽하지는 않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힘들다. 하지만 함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1월에는 아팠다. 일주일쯤 누워 있었다. 아내가 아이를 돌보고, 밥을 해주고, 약을 챙겨줬다. 미안했다. 하지만 아내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쉬어." 그 말이 고마웠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쉬었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뒤처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지나니 괜찮아졌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슬프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12월이다.
창밖의 나무들을 본다. 잎이 다 떨어졌다. 하지만 나무는 여전히 서 있다. 뿌리를 내리고, 땅 속에서 힘을 모으고, 다음 봄을 기다린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큰 변화는 없었다. 드라마틱한 일도 없었다. 그냥 뿌리를 내리고,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지켜봤다.
2025년을 돌아보며 후회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있다. 물론 있다. 하지 못한 것들, 해야 했는데 하지 않은 것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할 수도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견딜 수 있는 만큼 견디고, 살아낼 수 있는 만큼 살아낼 뿐이다.
2025년은 특별한 해가 아니었다. 평범한 해였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나를 이해하게 됐다. 조금 더 나에게 관대해졌다. 조금 더 삶을 받아들이게 됐다.
며칠 후면 2026년이 온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묻는다. "새해 계획이 뭐예요?"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정말로 모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2026년에도 나는 살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이하고,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좋은 날도 있을 것이고, 나쁜 날도 있을 것이다. 의미 있는 날도 있을 것이고, 의미 없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괜찮다.
2025년, 안녕.
당신은 완벽하지 않았다. 나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여기까지 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창밖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앙상한 가지들이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작은 소리. 하지만 분명한 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미소 짓는다.
2026년, 우리는 또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