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즐거운 것이 어려워졌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웃는 것도, 놀러 가는 것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것도, 모두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물다섯 살 때는 쉬웠다. 친구가 "술 한잔하자"고 하면 바로 나갔다. 영화 보고 싶으면 그냥 봤다. 여행 가고 싶으면 갔다. 즐거움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허락받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삼십 대가 되니 달라졌다. 즐기기 전에 먼저 계산한다. "이거 하는 동안 밀린 일은?" "이렇게 돈 쓰면 이번 달 적자 아니야?"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즐거움보다 의무가 먼저 떠오른다.
며칠 전 동생이 물었다.
"형, 요즘 뭐 하면 즐거워?"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즐거운 것이 없는 게 아니라, 즐거워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한강 공원에 갔다. 별 이유 없이, 그냥. 돗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봤다.
처음 십 분은 불편했다.
"이렇게 시간 낭비해도 되나?" "집에 가서 청소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삼십 분쯤 지나자, 조금씩 달라졌다. 구름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바람이 기분 좋았다. 옆에서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알았다. 즐거움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냥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즐거움에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열심히 일했으니까 쉴 자격이 있어", "시험 끝났으니까 놀아도 돼", "프로젝트 성공했으니까 축하해야지". 즐거움은 항상 무언가의 보상이어야 했다.
하지만 즐거움은 벌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즐거움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웃어도 되고, 아무 성과 없이 쉬어도 되고, 아무 명분 없이 즐거워도 된다.
내 직장 동료 K는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기타를 친다. 잘 치지는 못한다. 그냥 혼자 방에서 몇 곡 연주할 뿐이다. "왜 하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즐거우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즐거우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니.
우리 사회는 생산성을 중시한다. 모든 것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취미도 부업이 되고, 쉼도 재충전이 되고, 여행도 자기계발이 된다. 순수한 즐거움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즐거움은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필수다. 즐거움 없이는 살 수 없다. 아니, 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사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즐거울 용기. 이상한 표현이다. 즐거움에 왜 용기가 필요할까? 하지만 정말 필요하다. 주변의 시선을 무시할 용기,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용기,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낼 용기.
지난주 나는 혼자 노래방에 갔다. 삼십 대 후반의 남자가 혼자 노래방에 간다는 게 이상해 보일까 봐 주저했었다. 하지만 갔다. 두 시간 동안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음정도 박자도 엉망이었지만, 즐거웠다. 정말 즐거웠다.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게 바로 즐거울 용기구나. 다른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든, 생산적이지 않든, 의미가 없든, 그냥 즐기는 것.
어린 시절에는 모두 그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묻지 않는다. "이거 하면 뭐가 남지?" "이거 해서 뭐가 좋아?" 그들은 그냥 즐긴다. 웃고, 뛰고, 놀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언제 그 용기를 잃어버렸을까? 어쩌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그저 허락하기만 하면 된다. 자신에게.
오늘 저녁, 나는 아무 계획 없이 산책을 할 것이다. 효율적이지 않아도,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걷고, 보고, 느낄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