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한다. 내가 날 수 있다면?
어렸을 때는 자주 그런 상상을 했다. 팔을 펼치면 하늘로 떠오르고, 구름 위를 날아다니고, 새처럼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다면. 슈퍼히어로처럼, 피터팬처럼.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상상은 줄어들었다. 현실적인 생각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월급, 대출, 승진, 노후. 무거운 것들. 땅에 붙어 있는 것들.
그런데 가끔, 정말 가끔, 여전히 생각한다. 내가 날 수 있다면?
지난주 회의 시간. 상사의 긴 말을 듣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갔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저 비둘기처럼 창문을 열고 날아가버릴 수 있다면? 이 답답한 회의실을, 이 지루한 보고를, 이 무거운 책임들을 뒤로하고.
물론 불가능하다. 나는 날 수 없다. 중력은 나를 땅에 묶어둔다. 현실은 나를 책상에 앉혀둔다.
여덟 살이던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구름 위에서 놀고, 새들이랑 친구하고, 세계 일주할 거야!"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글쎄, 출근 안 해도 되겠지?"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언제부턴가 상상조차 현실적으로 하고 있었다.
나는 것을 상상하면서도, 출근 얘기를 한다니.
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하늘을 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자유의 은유다. 중력에서, 규칙에서, 책임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삼십 대가 되니 모든 것이 무겁다. 해야 할 일들, 지켜야 할 약속들, 채워야 할 기대들. 나는 점점 무거워지고, 점점 더 땅에 붙어간다. 날아오르기는커녕, 제대로 걷기도 힘들 때가 있다.
가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본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고 있다. 피곤한 얼굴, 무거운 어깨. 우리는 모두 땅에 묶여 있다. 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상상한다. 내가 날 수 있다면?
서울 하늘 위를 날며 야경을 보고, 한강을 따라 자유롭게 날아가고, 출근길 지옥철을 피해 회사까지 날아가고, 주말에는 제주도까지 그냥 날아가버리고.
웃긴 상상이다. 유치한 상상이다. 하지만 이 상상이 주는 해방감은 진짜다. 잠시라도, 상상 속에서라도, 나는 자유롭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제로 나는 것이 아니라, 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상상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어주니까.
내 직장 선배는 한 번 말했다. "젊었을 때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이제는 뭐든 할 수 없을 것 같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들수록 가능성은 줄어들고, 한계는 분명해진다.
하지만 상상만큼은 자유다. 상상 속에서만큼은, 나는 여전히 날 수 있다. 중력을 벗어날 수 있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어제 밤, 꿈을 꿨다. 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팔을 펼치니 몸이 떠올랐고, 서울 상공을 날아다녔다. 자유롭고, 가볍고, 행복했다.
깨어났을 때 현실이 돌아왔다. 중력이, 출근이, 책임이. 하지만 꿈의 여운은 남아 있었다. 그 가벼움의 기억이.
가끔 생각한다. 내가 날 수 있다면?
하지만 이제는 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다. 상상하는 것이다.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우리는 날 수 없다. 하지만 날 수 있다고 상상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상상이, 무거운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날개가 된다.
오늘도 나는 출근한다. 지하철을 타고, 회의에 참석하고, 일을 한다. 땅에 붙어서.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창밖의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