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라는 것

by 생각의정원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쉬운 일인 줄 알았다. 정해진 시간에 나가면 되고, 하기로 한 것을 하면 되고, 말한 대로 행동하면 되는 것. 그런데 살다 보니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약속은 미래에 대한 계약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나를 미리 정해두는 것. 문제는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지 않다는 점이다.


약속을 잡을 때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날 저녁 괜찮아?" "응, 괜찮아." 일주일 후, 한 달 후의 나는 분명 시간이 있을 것 같다. 여유로울 것 같다. 만나고 싶을 것 같다.


하지만 그날이 오면 다르다. 피곤하다. 집에 있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 약속을 잡던 그때의 나와, 약속을 지켜야 하는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도 나간다. 약속이니까.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만나면 괜찮다. 이야기하고, 웃고, 즐겁다. "역시 나와서 잘했네"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번 약속을 잡을 때, 또 같은 실수를 한다. 미래의 나는 분명 괜찮을 거라고 착각한다.

약속에는 무게가 있다.


가벼운 약속도 있다. "다음에 밥 한번 먹자." 이건 사실 약속이 아니다. 인사 같은 것이다. 둘 다 안다. 실제로 만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을.


무거운 약속도 있다. "이번 주말 꼭 가야 해." 이건 진짜 약속이다. 안 가면 안 되는 것. 지키지 않으면 신뢰가 깨지는 것.


문제는 사람마다 약속의 무게를 다르게 느낀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벼운 약속이, 다른 사람에게는 무거운 약속이다. "밥 한번 먹자"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저울로 약속을 단다.


약속을 어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연락 없이 안 나가는 것. 이건 최악이다. 하지만 의외로 흔하다. 그냥 잊어버리거나, 귀찮아서, 또는 용기가 없어서.


직전에 취소하는 것. "갑자기 일이 생겨서." 거짓말일 수도 있고, 진짜일 수도 있다. 받는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


시간을 어기는 것. 10분, 20분, 30분. "곧 도착해"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가장 교묘한 방법은 약속을 흐지부지 미루는 것이다. "이번 주는 바빠서 다음 주에." 다음 주가 되면 또 "다다음 주에." 결국 약속은 사라진다. 명확히 거절하지 않았으니 죄책감도 덜하다.

나이가 들수록 약속이 무서워진다.


젊을 때는 약속을 많이 잡았다. 이것저것 다 괜찮았다. 에너지가 넘쳤으니까.


지금은 신중해진다. 약속을 잡기 전에 생각한다. 정말 만나고 싶은가. 정말 갈 수 있는가. 지킬 수 있는가.


그래서 약속이 줄어든다. 만나는 사람도 줄어든다. 괜찮은 일인지 모르겠다. 신중한 건지, 폐쇄적인 건지.

하지만 확실한 건, 잡은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적게 약속하고, 확실하게 지키는 것. 그게 지금의 방식이다.


약속을 못 지킨 적이 있다.


미안했다. 변명하고 싶었지만, 결국 내 잘못이었다.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은 것이니까.


반대로 약속을 지켜주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화가 났다. 하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괜찮아, 다음에 보자" 하고 넘어갔다. 속으로는 괜찮지 않았지만.


약속은 신뢰의 문제다. 한 번 어기면 금이 간다. 여러 번 어기면 깨진다. 고치기 어렵다.


그래서 약속은 조심스럽다. 쉽게 하면 안 되고, 했으면 지켜야 한다.


요즘은 약속을 덜 잡는다.


"다음에 보자"고 말하지 않는다. 보고 싶으면 "이번 주 금요일 어때?"라고 묻는다.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안 되면 솔직히 말한다. "요즘 바빠서 힘들 것 같아. 다음 달쯤 괜찮을까?" 애매하게 두지 않는다.


약속은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다. 말 한마디로 하지만, 그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는 것. 그게 어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