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저녁이었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다가 막혔다.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시간째 같은 문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동료가 말했다. "AI한테 물어보지 그래."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검색창을 열었다. AI 챗봇. 질문을 입력했다. "이 내용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요?"
3초 후, 답이 왔다. 깔끔했다. 논리적이었다. 내가 한 시간 동안 고민한 것을 3초 만에 정리해줬다.
복사했다. 붙여넣었다. 조금 수정했다. 완성됐다.
편리했다. 하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내가 쓴 건가. 아니면 AI가 쓴 건가. 아니, 둘이 함께 쓴 건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AI와 함께 사는 세상. 언제부터였을까.
스마트폰을 열면 AI가 있었다. 음악을 추천해주고, 뉴스를 골라주고, 사진을 보정해줬다. 검색하면 AI가 답했다. 질문하면 AI가 설명했다. 글을 쓰면 AI가 고쳐줬다.
편리했다. 빨랐다. 정확했다.
하지만 가끔은 불편했다.
대학생 때가 생각났다. 리포트를 쓸 때 도서관에 갔었다. 책을 찾았다. 한 페이지씩 넘기며 읽었다. 필요한 부분을 노트에 적었다. 손으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피곤했다.
하지만 뭔가 남았다. 머릿속에. 내가 찾은 것, 내가 읽은 것, 내가 생각한 것.
지금은 AI에게 물어보면 됐다. 3초 만에. 답이 왔다. 깔끔하게 정리돼서.
하지만 뭔가 남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냥 복사하고, 붙여넣고, 끝이었다.
편리한 건 맞다. 하지만 뭔가 잃어버린 것 같았다.
친구와 카페에서 만났다. 금요일 저녁. 오랜만이었다.
"요즘 뭐 해?" 친구가 물었다.
"일하고, 집 가고, 그냥 그렇게."
"나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둘 다 핸드폰을 봤다. 습관적으로.
친구가 말했다. "AI 그림 그리는 거 봤어? 진짜 잘 그리더라."
"응, 봤어."
"이제 화가도 필요 없는 거 아닐까."
"글쎄."
또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근데 말이야," 내가 말했다. "AI가 그린 그림이랑 사람이 그린 그림이랑 뭐가 달라?"
"모르겠어. 똑같아 보이던데."
"그러면 화가가 필요 없는 거 아냐?"
"그런가."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똑같아 보이는데 다른 것 같았다. AI 그림은 완벽했다. 실수가 없었다. 비율이 정확했다. 색감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사람 그림에는 뭔가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 불완전함. 삐뚤어진 선. 어색한 비율.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
AI 그림에는 사람이 없었다.
주말에 산책을 나갔다. 공원. 벤치에 앉았다. 사람들을 봤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무언가 설명하고 있었다. 나무에 대해서. 잎사귀를 만지며. 손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AI에게 물어보면 더 정확한 답을 얻을 것이다. 나무의 종류, 특성, 생태. 3초 만에.
하지만 할아버지의 설명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목소리의 온기. 손짓. 미소. 함께 있는 시간.
AI는 정보를 준다. 하지만 온기는 주지 못한다.
저녁에 글을 쓰려고 했다. 일기 같은 것. 노트를 펼쳤다. 펜을 들었다.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AI에게 물어볼까. "오늘 뭐 쓰면 좋을까요?"
하지만 멈췄다. AI가 알려주면 그건 내 글이 아니었다. AI의 글이었다.
천천히 썼다. 한 문장. 지웠다. 다시 썼다. 또 지웠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건 내 글이었다. 서툴고, 어색하고, 불완전하지만. 내 것이었다.
그게 중요한 것 같았다.
AI와 함께 사는 세상. 편리했다. 빨랐다. 정확했다.
하지만 모든 걸 AI에게 맡기면 안 될 것 같았다. 뭔가는 내가 해야 했다. 서툴더라도. 느리더라도. 불완전하더라도.
왜냐하면 그게 사람이니까.
AI는 답을 준다. 하지만 과정은 주지 못한다. AI는 결과를 만든다. 하지만 경험은 만들지 못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시간. 한 페이지씩 넘기는 시간. 노트에 적는 시간. 생각하는 시간.
그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
AI가 3초 만에 답을 주는 세상에서도, 나는 천천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속도로. 내 방식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느려도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다.
그게 사람이니까.
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컴퓨터를 켰다. AI 툴이 자동으로 실행됐다.
사용할 것이다. 물론. 편리하니까. 하지만 모든 걸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은 내가 할 것이다. 결정은 내가 할 것이다. 글은 내가 쓸 것이다.
AI는 도구다. 좋은 도구. 하지만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건 도구를 쓰는 사람이다. 나.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산다. AI와. 하지만 주인은 여전히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