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미래에 꽂아두는 핀 같은 것이다.
지도 위에 목적지를 표시하듯,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위에 점 하나를 찍는 행위. 우리는 그 점을 향해 살아간다. 다음 주 토요일 오후 두 시, 강남역 3번 출구 앞. 그 문장 하나가 생기는 순간, 그때까지의 시간이 전부 그 점을 향해 기울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두 사람이 함께 붙잡고 있는 것이다. 한 명이 놓아버리면 그 약속은 없던 것이 된다. 그러니까 약속은 믿음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설계도도 없고, 계약서도 없고, 오직 서로가 그것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허공에 세워지는 것.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다.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약속을 어기는 일이 묘하게 나를 작아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미안한 것과는 별개로, 내가 내 말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래 남는다. 며칠이고 어딘가에 걸려 있는 것처럼.
상하이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약속의 무게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사람에게 약속은 계획이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 사항이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인사말과 비슷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불편했다. 나중에는 그냥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약속 시간보다 오 분 일찍 도착하는 사람이었다. 습관은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다.
기다리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상대를 기다리는 시간은 묘하게 고요하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고, 무언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만이 공기 중에 떠 있다. 나는 그 시간이 싫지 않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핸드폰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다. 약속이 있다는 것은 기다릴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보다 든든한 일이다.
반대로, 약속이 깨지는 순간도 있다.
갑자기 안 될 것 같다는 문자 한 통. 나는 이미 코트를 입고 있다. 나는 그 순간 특별히 화가 나거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까 지도 위에 찍어두었던 점 하나가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갑자기 그 시간이 형태 없는 것이 된다.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잠시 막막하다.
아마도 그래서 약속이 소중한 것일 것이다. 약속이 있다는 것은 시간에 윤곽이 생긴다는 뜻이다. 막연하게 흘러가던 하루에 어떤 형태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형태 안에 다른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게 핵심이다. 나 혼자만의 계획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같은 시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
오래된 약속일수록 더 그렇다.
몇 년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가 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헤어지면서 말한다. 다음에 또 보자.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 하나가 우리 사이에 느슨하게 걸려 있다. 어느 날 문득 연락이 오고, 우리는 다시 어딘가에서 만난다. 몇 년이 지났어도 대화는 어제 하던 것을 이어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 약속이 시간을 건너뛰게 해준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약속의 진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두는 것. 보이지 않는 실 하나를 두 사람 사이에 걸어두는 것. 그 실이 팽팽할 때도 있고 느슨할 때도 있지만,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코트를 입고 문을 나선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오후는 충분히 형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