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곳은 매일 아침 새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제와 정확히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출입증을 태그하는 소리. 엘리베이터 안의 짧은 침묵.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 화면이 천천히 밝아오고, 그 빛 앞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이 순서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월요일이든 금요일이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이 작은 의식들은 어김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침 그 반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치 오래된 옷을 입는 것처럼.
회사 생활의 본질은 어쩌면 반복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 견딘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반복에 몸을 맞추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엔 분명히 어색했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그 리듬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점심은 열두 시 반쯤. 오후 세 시가 되면 괜히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집중력보다 먼저 시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몸이 먼저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 낯설긴 하다.
회의실에서 누군가의 발표를 들으며, 나는 가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 사람들과 나는 왜 이 방에 함께 있는 것일까.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가 어떤 우연들이 겹쳐서 같은 테이블 앞에 앉게 된 사람들. 그 우연이 쌓여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알고, 얼굴을 알고, 각자 어떤 표정으로 아침 커피를 마시는지를 안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도, 서로에 대해 생각보다 모르는 것들이 많다.
그게 회사라는 공간의 독특한 거리감이다.
가깝고도 멀다. 감정을 나누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선 너머로는 넘어가지 않는다. 그 선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고, 아무도 그것을 어기려 하지 않는다. 나는 때로 그 선이 피곤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선이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나간다.
나는 가끔 혼자 밥을 먹는 날이 있다. 회사 근처 작은 식당, 창가 자리. 혼자 먹는 밥이 나쁘지 않다. 소란스러운 오전과 소란스러울 오후 사이에 잠깐 내 편이 되어주는 시간이다. 뚝배기 된장찌개에서 김이 오른다. 숟가락을 들고 잠깐 멍하니 앉아 있다. 오전에 있었던 일들이 멀어지고, 오후에 있을 일들은 아직 가까이 오지 않은 그 틈. 나는 그 틈을 좋아한다.
일이 잘 풀리는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살다 보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다. 잘 풀리지 않는 날은 퇴근길이 유독 길게 느껴진다. 지하철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나는 억지로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냥 그 모름과 함께 집까지 간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조금은 괜찮아진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중요해 보이는 일이 실은 별것 아닌 경우가 많고,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가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는 것. 능력보다 태도가 기억되는 경우가 많고, 화려한 성과보다 꾸준한 사람이 결국 남는다는 것. 이런 것들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냥 어느 날 문득, 알게 된다.
퇴근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컴퓨터 화면이 꺼지고, 머그잔을 씻고, 코트를 집어 든다. 출입증을 다시 태그한다. 아침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나온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바깥 공기가 다르다. 낮보다 조금 차갑고, 조금 자유로운 느낌.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 하루가 있었다. 별것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한 날들이 쌓여서 결국 우리의 시간이 된다. 회사 생활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거창하지 않은 하루들을 거창하지 않게 살아내는 일.
나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집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