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것이 너무 많은 걸까. 아니면 너무 적은 걸까. 행복하고 싶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두 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읽힌다. 당연한 바람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딘가 민망한 고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그 말을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다.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아직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욕심이라는 단어는 늘 조금 불편하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배웠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배웠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고 배웠다. 그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들이 행복을 원하는 마음까지 억누르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정도면 됐지, 더 바라면 안 되지, 그런 생각들. 그 생각들이 쌓이면 사람은 점점 조용해진다.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지 않게 된다.
나는 그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을 원하는 마음은 욕심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일,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하루를 기대하는 일, 그 마음이 없어지는 순간 사람은 그냥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 된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이 된다.
문제는 행복의 모양이 자꾸 바뀐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단순했다. 좋아하는 것을 먹으면 행복했고, 좋아하는 사람과 있으면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행복의 조건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더 좋은 자리, 더 많은 돈, 더 나은 평가. 그것들을 얻고 나면 잠깐 행복했다가, 이내 또 다른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행복이 자꾸 저만치 앞에 있었다. 닿을 것 같으면서 닿지 않는 곳에.
그게 욕심과 행복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욕심은 끝이 없다. 채워도 채워도 다시 비어 있다. 반면 행복은 순간 속에 있다. 지금 이 커피가 맛있다는 것, 오늘 바람이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것, 오랜 친구와 나눈 대화가 끝나고 나서 느끼는 그 포근함. 그것들은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결국 그런 순간들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늘 그것을 알게 되는 게 조금 늦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나는 행복을 목적지로 두지 않으려 한다.
목적지로 두는 순간, 행복은 항상 도착하지 않은 곳이 된다.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있는 것이 된다. 그보다는 지금 이 하루 안에서 작은 것들을 발견하는 쪽이 낫다. 점심으로 먹은 것이 예상보다 맛있었다거나, 오늘 하늘 색이 좀 특별했다거나, 오랫동안 듣지 않던 노래가 우연히 흘러나왔다거나. 그런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연습하고 있는 행복의 방식이다.
물론 쉽지 않다.
일이 잘 안 풀리는 날, 관계가 어긋나는 날, 내가 기대했던 것과 현실이 너무 다른 날에는, 그 작은 것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때는 그냥 오늘은 그런 날이라고 두는 수밖에 없다. 억지로 행복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멀어진다. 행복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은 욕심이 아니다.
다만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행복을 쫓으면 도망가고, 행복을 기다리면 늦게 오고, 행복을 억지로 만들면 가짜가 된다. 결국 가장 나은 방법은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잘 보고, 오늘 하루를 너무 크지 않은 단위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아 나 지금 꽤 괜찮구나 싶은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행복이다.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살다 보니 거기 있었던 것. 목적지가 아니라 걷다가 발견한 풍경 같은 것. 나는 그런 행복이 더 오래 간다고 생각한다. 애써 손에 쥔 것보다, 자연스럽게 손에 닿은 것이 더 오래 머무는 법이다.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도 된다.
다만 그 마음을 너무 꽉 쥐지 않는 것이 좋다. 손을 너무 세게 쥐면 오히려 빠져나가는 것들이 있다. 조금 느슨하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그 사이 어딘가에 행복이 살고 있다.
오늘도 그 어딘가를 향해, 너무 서두르지 않고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