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손, 첫 번째 마음

by 생각의정원

중고차를 산다는 건 누군가의 시간을 이어받는 일이다.


핸들을 처음 잡았을 때, 나는 그것을 느꼈다. 이 핸들을 전에 누군가가 쥐었다. 출근길에, 퇴근길에, 어쩌면 울면서, 어쩌면 노래를 부르면서. 그 사람의 손 모양이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나는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괜찮은 물건은 원래 그렇게 전해지는 거라고.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새 차를 사고 싶었다.


아내를 위한 차니까. 아이를 태우는 차니까. 깨끗하고, 아무도 손대지 않은, 비닐도 뜯지 않은 그런 차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선물은 새것이어야 한다는, 어딘가에서 배운 감각.


하지만 현실은 늘 감각보다 먼저 도착한다. 숫자를 들여다보고, 보험료를 계산하고, 주차비를 더하고 나면 새 차는 숫자가 아니라 부담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잠시 노트북 화면을 닫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생각했다. 중요한 게 뭔지를.


새것이냐 헌것이냐가 아니었다. 이 차가 아내를 안전하게, 따뜻하게 데려다줄 수 있느냐. 그게 전부였다.

중고차 사이트를 세 곳 열어놓고 밤새 들여다봤다.


필터를 걸고, 연식을 좁히고, 주행거리를 비교했다. 사진 속 차들은 전부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기획 일을 오래 한 사람은 안다. 잘 편집된 결과물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나는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피로해졌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판단이 흐려진다는 걸, 이 일을 하면서 오래전에 배웠는데.


그때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친구가 이민을 가게 됐는데, 차를 처분해야 한다고. 혹시 우리가 필요하면 가져가도 된다고.


우리는 차를 보러 가지 않았다.


사진도 많이 요구하지 않았다. 시승도, 꼼꼼한 점검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차가 필요했고, 그녀에게는 팔아야 할 차가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 사이에서 조건을 따지는 건, 어딘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그냥 믿었다. 이 사람이 타던 차라면 괜찮을 거라고.


따지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결정들은 정보보다 관계에서 나온다. 데이터가 아니라 신뢰에서. 나는 그런 결정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계산이 끝난 자리에는 온기가 없기 때문이다.


며칠 뒤, 차는 지방에서 300킬로미터를 달려 서울로 왔다. 우리가 가는 게 아니라, 차가 오는 방식으로. 운송 기사가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두고 간 그 차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혼자 잠깐 서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채로 여기까지 온 차. 300킬로미터를 혼자 건너온 것처럼 느껴졌다.


어딘가 그 차가 대견했다.


아내에게 차 키를 건넬 때, 나는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네 차야.”

그것뿐이었다. 아내는 키를 받아 들고, 운전석에 앉아 시트를 조절했다. 백미러를 고치고, 핸들을 한 번 잡아보고, 조용히 앞을 바라봤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좋았다. 자기 자리를 찾은 사람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이 차가 새것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그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아내는 아이가 태어난 뒤로, 많은 것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혼자만의 시간, 맘껏 자는 밤, 계획대로 흘러가는 하루. 그것들을 잃은 것에 대해 크게 말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다음 날을 살았다.


그래서 나는 이 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잠깐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그냥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작은 방.


친구가 두고 간 차지만, 그 안에서만큼은 새로 시작해도 된다고.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이 차를 받아왔다.


차는 여전히 떠난 사람의 시간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출근길, 어떤 비 오는 날의 와이퍼 소리, 어느 여름밤 열어 둔 창문. 그 시간들 위에 이제 우리의 시간이 쌓일 것이다. 아이를 태우고 달리는 주말, 함께 부르는 노래, 신호등 앞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들.


300킬로미터를 건너온 차는, 이제 이 도시의 골목을 달린다. 멀리서 잘 살고 있을 그녀가 가끔 이 차를 떠올릴지는 모르겠다. 아마 모르겠지.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길을 달리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 차는 여기서, 누군가의 일상을 조용히 이어갈 것이다.


남겨진 것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계속된다.


오늘 밤, 아내가 아이를 재우고 나서 말했다.


“차, 마음에 들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길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음에 든다는 말은, 때로 가장 긴 문장보다 더 많은 것을 담는다. 그리고 잘 쓰겠다는 말은, 어쩌면 가장 진심 어린 작별 인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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