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에 대하여

by 생각의정원

어른이 되면 모르는 게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그랬다. 어른들은 뭔가를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당당하게 걸어다니고, 망설이지 않고 주문을 하고, 서류에 아무렇지 않게 서명을 했다. 저 사람들은 세상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모르는 것의 목록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늘어나 있었다.


스무 살 때는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잠깐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기가 모른다는 걸 아는 무지와, 자기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무지. 젊음의 자신감은 대부분 후자에서 온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전자가 늘어난다. 저게 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다. 그 무지가 쌓이면 사람은 조용해진다. 예전처럼 쉽게 단언하지 않게 된다.


그것이 성숙인지, 아니면 그냥 체념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소설가 최인훈은 어딘가에서 인간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문장이 자꾸 떠오른다.


우리는 많은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냥 반복을 통해 낯섦이 사라진 것일 수 있다. 죽음에 대해, 이별에 대해, 실패에 대해, 우리는 정말로 이해하게 된 걸까. 아니면 그냥 여러 번 곁에 두다 보니 덜 놀라게 된 것일까.


이해와 익숙함. 그 둘 사이의 거리가 어쩌면 생각보다 멀지 않을 수도 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가 뭘까.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고,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어딘가 취약해지는 느낌이 든다. 특히 가까운 사람 앞에서, 혹은 중요한 결정 앞에서. 알고 있는 척, 이해하고 있는 척, 그 연기를 우리는 꽤 능숙하게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짜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른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확신에 차 있는 사람보다,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의 말에 더 무게가 실렸다.


모른다는 말이 신뢰를 깎는 게 아니라 오히려 쌓는다는 것을, 나도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지금도 모르는 것들이 많다. 아마 앞으로도 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사실이 예전만큼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른다는 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직 놀랄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른다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여백이다.


여백이 없는 그림은 답답하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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