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어느 순간, 들리지 않게 됐다.
냉장고가 조용해진 게 아니었다. 소리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내가 그것을 더 이상 소리로 듣지 않게 된 것이다.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익숙해진다. 새 직장의 긴장감, 낯선 동네의 어색함, 처음 만났을 때 두근거리던 감각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배경이 된다. 무대 뒤편으로 밀려나 더 이상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적응이라고 부르고, 대체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는 그 익숙함이 안타깝다.
처음 봤을 때 숨이 멎었던 풍경이 있다. 몇 번 지나다니다 보면 그냥 창밖이 된다. 처음 먹었을 때 감탄했던 음식이 있다. 자주 먹다 보면 그냥 밥이 된다. 우리는 좋은 것들을 서서히 당연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잃고 나서야, 혹은 오래 떨어져 있다 돌아와서야, 다시 처음처럼 느낀다.
익숙함은 일종의 망각이다.
조용하고 painless한, 그러나 분명한 망각.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상실의 시대』였다. 뭔가를 얻은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뭔가를 잃은 것 같은 이상한 독후감이었다. 그 감각이 좋아서 다음 소설을 집어 들었다. 그 다음도. 어느 시점부터 그 이상한 감각이 사라졌다. 하루키 특유의 문체에 익숙해진 것이다.
익숙해지는 것은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처음의 충격을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 첫 번째 낯섦은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다. 시간은 그런 식으로 어떤 것들을 조용히 가져간다.
그렇다면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처음처럼 반응하려고 버티는 삶은 너무 피곤하다. 그것은 적응이 아니라 소진이다. 인간이 익숙해지는 능력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모든 자극에 매번 새롭게 놀라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문제는 익숙함 자체가 아니라,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게 한때는 특별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지금은 당연하지만, 언젠가 이것도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 인식 하나만으로도, 익숙한 것들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진다.
냉장고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 건 이사를 하고 나서였다. 새 집의 새 냉장고. 또 며칠 밤을 그 소리와 함께 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전에 살던 집 냉장고 소리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전 집의 냉장고 소리가 그리운 게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것들을 그런 식으로 뒤늦게 안다.
그것이 사라지거나, 달라지거나, 혹은 내가 떠나고 나서야.
익숙해진다는 건 어쩌면, 천천히 작별을 연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