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는 언제나 같은 냄새가 난다.
어느 회사든, 어느 층이든.
약간의 커피 냄새와 약간의 마커 냄새,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냄새.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결정 보류의 냄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회의실에 모여서 무언가를 결정하러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회의실에서 결정되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회의에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오래 지켜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말이 많은 것과 생각이 깊은 것은 다른 능력이었다.
심지어 가끔은 반비례하기도 했다.
말을 적게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듣고 있다.
듣고, 정리하고, 어딘가에 보관한다.
그 사람들이 드물게 입을 열 때, 회의실의 공기가 잠깐 달라진다.
모두가 알아챈다. 그 순간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는,
우리가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은 태어남으로써 주어지고, 친구는 시간이 만들어낸다.
하지만 동료는 채용이라는 과정을 통해 어느 날 옆자리에 앉는다.
서로의 취향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 채.
그런데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같은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꽤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잘 작동한다는 것도, 조금 이상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속 인물들을 종종 혼자 일하게 만든다.
번역을 하거나, 바를 운영하거나, 혼자 달리거나.
사회적 맥락에서 한 발 비껴선 사람들.
나는 그 인물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다. 회의 일정이 빽빽한 오후에 특히.
하지만 혼자 하는 일에는 교정이 없다. 내가 틀렸을 때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동료라는 존재는 성가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나를 보고 있다.
그 불편함이 사실은 꽤 소중한 것일 수 있다.
오래 함께 일한 사람과는 말이 줄어든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묻지 않아도 파악한다. 회의에서 눈빛 하나로 같은 생각을 확인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 순간은 짧지만,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다. 긴 설명보다 짧은 눈빛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순간.
관계가 깊어진다는 건 언어가 필요 없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언젠가 팀이 해체됐다.
어느 날 갑자기 조직도가 바뀌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특별한 이별 의식도 없었다.
그냥 어느 금요일이 마지막 날이었고, 각자 짐을 챙겨서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이상하게도 그게 더 허전했다. 요란한 끝이 아니라서. 마지막인지 모르고 나눈 마지막 점심이 있었고, 마지막인지 모르고 보낸 마지막 메신저가 있었다. 나중에야 그게 마지막이었다는 걸 알았다.
많은 것들이 그런 식으로 끝난다. 끝이라는 걸 모른 채로.
오늘도 회의실에 들어가서 마커 냄새를 맡으며 자리에 앉을 것이다. 누군가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적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열고, 누군가는 커피를 홀짝일 것이다.
결정은 반쯤 될 것이고, 나머지 반은 다음 회의로 미뤄질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각자의 일을 할 것이다.
별것 아닌 하루처럼 보이지만, 몇 년 후에는 이 시절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 회의실을, 그 마커 냄새를, 그 사람들의 옆얼굴을. 지나고 나면 대부분의 것들은 더 좋게 기억된다.
그것도 인간의 이상한 능력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