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바뀌는 날에는

by 생각의정원

봄이 오는 건 언제나 갑작스럽다.

어제까지 목도리를 두르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다가,

오늘은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문득 멈춰 서게 된다.


코트 안이 덥다. 햇살이 목덜미에 닿는다. 아, 하고 생각한다. 이게 봄이구나.


하지만 그 감각에 오래 머무르기가 어렵다.


오후가 되면 다시 바람이 차가워지고, 저녁에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게 된다. 날씨는 결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겠다고 말해놓고 오지 않고, 갔다고 생각하면 다시 돌아온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이사를 결심했지만 결국 짐을 다 싸지 못한 채 한 달을 더 눌러앉아 있는 것처럼.


나는 그 불확실한 사이 어딘가에서 매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너무 일찍 얇은 옷을 꺼내거나, 너무 늦게까지 두꺼운 옷을 고집하거나. 날씨 앱을 확인하면서도 결국은 자기 감각대로 행동한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정보보다 기분을 믿는다.


젊었을 때, 나는 날씨가 바뀌는 날이면 이유 없이 기분이 들떴다. 봄이든 가을이든, 계절이 전환되는 그 며칠 동안은 세상이 잠깐 다른 규칙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외투를 벗고 어딘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일이 작은 사건처럼 느껴졌다. 별것 아닌 일인데, 왜인지 특별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전환 자체에 반응했던 것 같다. 오늘과 어제가 달라지는 그 미세한 틈. 그 틈 속에서 사람은 잠깐 자기 삶의 질감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추웠다가 따뜻해진 공기가 피부에 닿을 때, 뭔가가 끝났고 뭔가가 시작됐다는 감각이 몸을 통해 온다. 머리가 아니라 피부가 먼저 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에서 긴 터널을 빠져나온 순간을 썼다. 눈의 나라가 시작되는 그 한 문장. 나는 그 장면을 읽을 때마다 날씨의 전환이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는 걸 다시 느낀다. 어떤 경계를 넘는 것. 다른 세계로 입장하는 것.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날씨 변화에 덜 저항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때는 추위를 이겨내는 게 일종의 의지 표현처럼 느껴졌다. 다들 패딩을 입을 때 혼자 얇은 자켓을 입고 걸어다녔다. 그런 쓸데없는 고집이 있었다. 더워도 에어컨을 늦게 켰고, 추워도 난방을 아꼈다.

몸이 환경에 맞추는 게 아니라 환경이 나에게 맞춰야 한다고, 어디선가 그런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냥 춥다 싶으면 입고, 덥다 싶으면 벗는다.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챙긴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날씨를 받아들이는 일이 삶의 태도와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예측하려 애쓰고, 예측이 빗나가면 당황하고, 결국은 지금 이 날씨 속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법을 날씨가 가르쳐준다. 매년 봄마다, 매년 가을마다.


며칠 전 아이를 데리고 나간 길에 갑자기 바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아이가 걷다가 멈췄다. 얼굴을 들어 바람 쪽을 바라보더니, 잠시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말은 없었다. 두 살짜리는 아직 날씨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 그냥 온몸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나는 그게 맞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설명하거나 이름 붙이려 하지 않고, 그냥 멈춰서 느끼는 것. 오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다 오지 않았더라도 그 방향을 믿고, 그냥 걸어가는 것. 날씨 변화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자세가 아닐까.


봄은 언제나 조금씩, 확신 없이, 그렇게 온다.

작가의 이전글갑작스런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