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다. 완전히 도착했다.
아침 7시에 알람이 울리면 이미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이 뜨겁고, 에어컨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을 감지하는 것은 몸이 먼저다. 머리가 여름의 도래를 인식하기 전에, 피부가 먼저 계절의 변화를 읽어낸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여름에 대해서, 그리고 기억에 대해서.
열두 살 여름, 할머니 댁 거실에서 먹었던 수박의 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1인 가구용 작은 수박 따위는 없었다. 수박은 언제나 거대했고, 할머니는 그것을 큰 칼로 반으로 갈라 우리 앞에 내놓곤 했다. 수박씨를 뱉어가며 먹는 것이 번거로웠지만, 그 번거로움마저도 여름의 일부였다. 이상하게도 그 수박은 지금 먹는 어떤 수박보다 달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수박 자체의 당도와는 관계없는, 다른 종류의 단맛이었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조미료다.
어제 인터넷으로 주문한 수박이 도착했다. 요즘은 무거운 수박을 들고 다니는 것도 싫어서 배송으로 시킨다. 아직도 나는 통째로 수박을 산다. 집에 와서 큰 칼로 반으로 갈라 아내와 함께 먹는다. 18개월 된 우리 아이도 작은 숟가락으로 수박을 먹으려 시도하지만, 대부분은 얼굴과 손에 묻어버린다. 수박씨를 뱉어가며 먹는 것이 여전히 번거롭지만, 그 번거로움마저도 여름의 일부다.
편의점 수박보다 확실히 달다. 아마도 그것은 함께 먹는다는 것, 그리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만들어내는 다른 종류의 단맛일 것이다.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휴가를 간다. 바다로, 산으로, 때로는 먼 나라로. 나도 그렇게 했던 때가 있었다. 스무 살 여름에 친구들과 함께 동해안으로 떠났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며 밤을 새웠고, 다음 날 오후까지 잠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무계획성이 자유로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요즘의 나는 여행보다는 집에 머무르는 편을 선호한다. 평일에는 출근해야 하고,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에어컨이 가동되는 거실에서, 찬 커피와 아이스티를 마시고 아이가 낮잠을 잘 때 잠시 아내와 영화, 드라마, 책 등 밀린 내용을 보며 시간을 즐긴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매미소리가 들려오고, 때때로 집 앞 놀이터의 아이들 소리가 올라온다. 우리 아이는 그 소리를 들으면 창문으로 걸어가서 밖을 내다본다. 이런 소리들과 작은 일상들이 만들어내는 여름의 배경음악을 나는 좋아한다.
여름이 주는 감각은 독특하다. 다른 어떤 계절도 여름만큼 강렬하게 몸에 달라붙지 않는다. 끈적끈적한 습기,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 얼음이 든 잔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 이 모든 것들이 여름이라는 계절을 구성한다.
며칠 전 점심 시간에도 나는 카페에 잠시 앉아 있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걸어다니고 있었다. 반팔, 반바지, 선글라스. 여름의 전형적인 복장들. 그들을 보며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오늘의 더위에 대해서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의 여름 추억에 대해서일까?
기억이라는 것은 계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여름의 기억들은 다른 계절의 기억들보다 더 선명하고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마도 그것은 여름이 주는 감각적 자극이 더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뜨거움, 밝음, 시끄러움. 이런 것들이 기억에 더 깊이 각인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여름에는 차가운 커피를, 사무실에서는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그것이 나만의 작은 일관성이다. 계절과 장소에 따른 나름의 규칙 같은 것.
한여름은 변화의 계절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방학을 맞고, 직장인들은 휴가를 계획한다. 나도 다음 주에 3일 휴가를 내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일상의 리듬이 조금씩 바뀐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것, 지하철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저녁에 집에 돌아와 아이를 목욕시키고 재우는 것. 이런 소소한 일상들은 계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어진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한여름 속에서, 며칠 전 나는 이런 생각들을 했다. 시간은 흘러가고, 계절은 바뀌고, 우리는 나이를 먹어간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여름 오후의 나른함, 매미소리, 찬 음료의 시원함.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 떠오르는 기억들.
매일 한여름은 더 깊어진다. 우리는 그것에 적응해간다.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어두고, 냉장고에는 차가운 제로 탄산과 아이용 보리차를 항상 채워두고, 아이의 기저귀 가방에는 손 선풍기와 물티슈를 넣어둔다. 작은 준비들이지만, 이런 것들이 세 식구가 한여름을 견뎌내는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기억한다. 지나간 여름들의 순간들을, 그때의 감정들을, 그리고 지금 우리 가족이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여름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