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의 오렌지

by 생각의정원


하루의 저녁,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다가 창밖을 보니 하늘이 온통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칼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잠시 멈춰 섰다. 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었나 싶어서.


"여보, 옥상 올라가자." 아내를 불렀다.


임신 15주차인 아내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아지트, 빌라 5층 옥상은 언제나 최고의 뷰를 제공해주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옥상에 올라서니 탁 트인 전망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변은 온통 초록색이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빌라 단지를 둘러싸고 있고, 그 사이로 풀들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작은 숲이 있다는 게 여전히 신기했다.


아내가 배를 살짝 쓰다듬었다. 아직 배가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신기했다. "우리 아기도 이런 노을을 엄마랑 같이 느끼겠지?" 아내가 말했다.


노을은 더 진해졌다. 5층 높이에서 보는 하늘은 더 넓고 웅장했다. 오렌지색이 분홍색과 섞이고, 그 위로 보라색 구름들이 천천히 흘러갔다.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실루엣처럼 검은 선으로 그려져 더욱 그림 같았다.


예전에 바리스타나 직장인으로 일할 때는 이런 여유가 없었다. 매일 저녁 시간엔 바쁜 러시 타임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느낌은 다르다.

아내와 함께, 그리고 뱃속의 작은 생명과 함께 이 아름다운 순간을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커피 한 잔 마시면 정말 좋겠다." 아내가 말했다. 임신 중이라 카페인을 줄이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디카페인으로 내려줄까?" 내가 제안했다.


바람이 불어왔다. 주변 나무들이 바스락거리며 초록의 파도를 만들었다.

그 소리가 마치 자연이 들려주는 자장가 같았다.


노을은 계속 변했다. 색깔도, 모양도, 강도도. 매분 매초가 다른 작품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그 변화를 지켜봤다. 아내의 손을 잡고 있으니 모든 게 완벽했다.


"우리 아이도 나중에 더 높은 곳에서 노을 볼까?" 아내가 다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가 태어나서 걸을 수 있게 되면, 우리 셋이 함께 더 높은 곳에 올라와 하늘을 볼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내려가자." 아내가 일어서며 말했다. 임신 중이라 너무 오래 서 있으면 안 되니까.


집에 돌아와 따뜻한 차를 끓였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나무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우리의 작은 숲, 우리의 아지트 옥상, 그리고 우리가 함께 본 오늘의 노을. 모든 게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아내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아기한테 오늘 이야기 해줘야겠다. 엄마 아빠가 예쁜 노을을 봤다고." 나도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늘의 이 순간들을 모두 기억해두자. 우리 아이에게 들려줄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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