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추억

by 생각의정원

윤도현 밴드의 '사랑했나봐'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회사 근처 편의점에 서 있었다. 목요일 저녁이었고, 삼각김밥 하나를 고르다가 매장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에 손을 멈췄다.


2007년이었다. 나는 이십대 였고, 취업 준비생이라는 애매한 신분으로 경기도의 한 작은 도시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오피스텔 원룸이었다. 월세는 40만 원이었다. 방은 작았지만 창문이 커서 오후가 되면 햇빛이 가득 들어왔다.


그 시절 나는 매일 같은 길을 걸었다. 아침에 도서관에 가고,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면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산책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습관적이었고, 운동이라고 하기엔 너무 느렸다. 그냥 걸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공원은 크지 않았다. 한 바퀴 도는 데 25분 정도 걸렸다. 산책로 옆으로 벚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벤치가 있었다. 평일 오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가끔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나,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노인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를 인식했지만 인사하지 않았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걸었다. MP3 플레이어에는 윤도현 밴드, 넬,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노래들이 들어 있었다.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시절에 유행하던 음악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노래들을 들으며 걸으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어느 화요일 오후, 평소보다 일찍 공원에 갔다. 11월이었고 해가 빨리 기울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었을 것이다. 취업은 될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나만 이렇게 헤매는 걸까.


하지만 묘한 평온함도 있었다. 벤치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것. 내가 여기 있든 없든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구름은 움직이고, 바람은 부는 것. 그게 외롭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유롭기도 했다.


공원 입구 근처에 작은 카페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2층짜리 건물이었고, 창가 자리에 앉으면 공원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 그곳에 갔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아직 커피 맛을 잘 알지 못했지만 창가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읽었다기보다는, 책을 펼쳐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공원을 걷는 사람들. 낙엽을 쫓아 뛰는 아이. 벤치에 앉아 전화하는 중년 남자.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그곳에 있었다. 나처럼.


어떤 날은 카페에서 윤도현 밴드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랑했나봐'였다. 사랑 노래였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다르게 들렸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의 노래. 아니,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의 노래.


2008년 봄, 나는 서울의 한 회사에 취직했다. 이사하기 전날, 마지막으로 그 공원을 걸었다. 4월이었고,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평소와 달리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 단위로, 연인들끼리, 친구들끼리.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나는 혼자 걸으며 생각했다. 이 시간도 지나가겠지.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결국은 지나간다. 그리고 언젠가 나는 이 순간을 돌아보며, 그때가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편의점 스피커에서 노래가 끝났다. 나는 삼각김밥을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 밖으로 나오니 초겨울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사람들이 퇴근길에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 공원은 여전히 그대로일까. 벤치는, 산책로는, 카페는. 아마도 조금씩 변했을 것이다. 나무는 더 자랐을 테고, 벤치는 새로 칠해졌을 것이다. 카페는 다른 가게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나는 여전히 그곳으로 돌아간다. 2007년 가을, 그 공원 벤치.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해가 천천히 기울고, 나는 혼자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쓰던 그 오후.


그 시간은 외롭기도 했지만, 필요한 시간이었다. 혼자 있는 법을 배우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아가는 시간. 세상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이는 시간.


그 노래는 남아 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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