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반, 나는 언제나처럼 일어나 주말이면 등산을 다녔다.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타고 산에 올랐다. 정상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등산을 멈췄다. 무릎이 아파서도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멈췄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막연했다. '이제 그럴 나이와 시기가 아닌 것 같아서.'
그게 얼마나 우스운 생각이었는지 최근에야 깨달았다.
나이라는 것은 참 이상한 개념이다. 우리는 그것을 숫자로 측정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나이는 숫자와 다르다. 어떤 날은 스무 살처럼 가볍고, 어떤 날은 팔십 살처럼 무겁다. 몸의 나이와 마음의 나이가 같은 법은 없다.
지난주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가 물었다.
"야, 너 아직도 그 일 해?"
"응, 아직도."
"대단하다. 난 벌써 세 번 바꿨어. 이제 지쳤어."
"지치는 건 일 때문이 아니야."
"그럼 뭐 때문인데?"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지."
그는 웃었다. 쓸쓸한 웃음이었다.
사실 나도 안다. 몸은 변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딘가가 뻐근하다. 예전에는 밤을 새워도 멀쩡했는데, 지금은 열한 시만 넘어도 눈이 감긴다. 계단을 빠르게 오르면 숨이 찬다. 사람 이름이 금방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다. 이십 대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많이 이해한다는 것을. 더 차분하다는 것을. 조급하지 않다는 것을. 사소한 일로 화내지 않는다는 것을.
재즈바에서 색소폰을 부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손가락은 주름투성이었지만, 음악은 젊었다. 아니, 젊다는 표현도 이상하다. 그의 음악은 그냥, 살아 있었다.
"몇 살이세요?" 누군가 물었다.
"일흔다섯."
"와, 그 나이에도 연주를 하시다니."
노인은 색소폰을 닦으며 말했다.
"그 나이라니. 나이가 뭔가요. 내가 지금 여기서 이걸 부는데."
그렇다. 나이가 뭔가.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나이는 의미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나이를 핑계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긴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늦어서", "벌써 이 나이에". 그런 말들로 스스로를 가두기 시작할 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으며 고등학생 두 명의 대화를 들었다.
"야, 너 이십 대 되면 뭐 하고 싶어?"
"나? 글쎄. 그때는 이미 늙었을 텐데."
나는 웃음을 참았다. 이십 대가 늙었다니.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그게 사실이다. 지금 열여덟 살인 그에게, 이십 대는 먼 미래다. 늙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지금의 내게 칠십 대는 먼 미래다. 늙은 것이다. 하지만 칠십 대의 누군가는 지금도 살고 있다. 사랑하고, 일하고, 웃고, 운다. 그들에게 칠십 대는 '늙은 것'이 아니라 '지금'이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공평하게 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삼십 년을 사는 동안 한 가지만 하고, 어떤 사람은 삼십 년 동안 열 가지를 한다. 어떤 사람은 마흔에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마흔에 인생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이웃집 할머니는 육십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왜 이제 와서?"
할머니는 대답했다.
"이제 와서가 아니야. 지금이지."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모든 게 들어 있었다. 이제 와서도, 벌써도, 아직도 아니다. 오직 지금.
비가 내린다. 나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빗소리를 듣는다. 이십 대에도 이렇게 비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때와 지금이 뭐가 다른가. 몸은 변했지만, 빗소리는 같다. 커피 향도 같다. 창밖을 보는 이 순간도 같다.
나이는 숫자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숫자가 당신을 규정하는 건 당신이 그렇게 허락할 때뿐이다. 서른에 늙을 수도 있고, 칠십에 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다. 무엇을 느끼고 있느냐다. 어떻게 살고 있느냐다.
밤이 깊어간다. 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이십 대에도 이렇게 글을 썼다. 사십 대에도, 육십 대에도 아마 이렇게 쓸 것이다. 그때도 여전히 생각할 것이다. 나이가 뭔지.
교훈이라는 게 있다면 이것이다. 나이를 세지 마라. 순간을 세라. "나이가 들어서"라는 말로 무언가를 포기하지 마라.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는 딱 하나다. 바로 지금이다. 그 "지금"이 스물이든, 오십이든, 팔십이든 상관없다. 살아 있는 한, 지금은 항상 시작하기에 완벽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