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번호표를 뽑는 것이다. 기계 앞에 서서 '일반 업무'를 누르고, 종이 한 장을 받는다. 127번. 현재 대기 번호는 103번. 나는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천장의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104번 고객님, 3번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한 남자가 일어선다. 그는 서류 뭉치를 들고 창구로 향한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본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사람에게 104번이라는 숫자는 무슨 의미일까.
번호표를 받는 순간 우리는 숫자가 된다. 이름도, 직업도, 고민도 사라진다. 그저 127번일 뿐이다.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숫자로 환원되는 순간,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대기실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70대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통장을 꼭 쥐고 계신다. 젊은 여자는 휴대폰을 보고 있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눈을 감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이유로 이곳에 왔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같다. 기다리는 사람들.
"105번 고객님, 1번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할머니가 일어나신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나는 생각했다. 저분에게 오늘 은행 방문은 얼마나 큰 일일까. 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전부일 수 있다.
벽에 걸린 전광판을 본다. 숫자들이 천천히 올라간다. 106번, 107번, 108번. 시간이 숫자로 가시화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고 나는 생각했다. 태어나는 순간 1번을 받고, 죽는 순간까지 숫자는 올라간다. 누구도 순서를 건너뛸 수 없다.
병원은 더 심각하다. 정형외과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고통도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42번. 현재 진료 중인 번호는 31번. 나보다 열 명이 먼저 아프다. 혹은 나보다 열 명이 먼저 왔다.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무릎을 계속 주무르신다. 젊은 남자는 목을 돌리며 찡그린다. 중년 여성은 허리에 손을 댄 채 조심스럽게 앉아 있다. 대기실은 고통의 전시장이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각자의 고통을 숫자로 바꿔 조용히 기다린다.
"32번 환자분,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할아버지가 일어나신다. 문이 열리고 닫힌다. 저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의사는 묻고, 환자는 답한다. 어디가 아프냐고, 언제부터 아팠냐고. 그리고 처방전을 받는다. 10분, 길어야 15분. 한 사람의 고통을 다루는 데 주어진 시간.
나는 생각했다. 번호표는 공평하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간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유명하든 무명이든, 아프든 덜 아프든. 순서는 절대적이다. 이것만큼 공평한 시스템이 또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번호표는 잔인하다. 기다림을 가시화하기 때문이다. 127번을 받고 104번이 불릴 때, 우리는 정확히 안다. 23명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한 사람당 평균 5분이라면 115분. 거의 두 시간. 막연한 기다림은 견딜 만하지만, 정확한 기다림은 고통스럽다.
구청 민원실도 마찬가지다. 발급 업무, 상담 업무, 증명서 업무. 용건에 따라 다른 번호표를 받는다. 나는 D-47번을 받았다. D는 무슨 의미일까. 나의 용건이 세 번째로 중요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단순히 카테고리일 뿐일까.
창구 직원을 본다. 그들은 하루에 몇 번이나 "다음 번호 고객님" 이라고 말할까. 100번? 200번? 숫자들은 끝없이 이어진다. 한 사람이 끝나면 다음 사람이 온다. 직원에게 우리는 모두 같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되지 않는다. 그저 처리해야 할 번호일 뿐.
"120번 고객님, 5번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일곱 명 남았다. 시계를 본다. 35분이 지났다. 생각보다 빠르다. 혹은 생각보다 느리다. 기다림의 속도는 상대적이다. 급할 때는 1분이 1시간 같고, 여유로울 때는 1시간이 1분 같다.
번호표를 다시 본다. 127번. 숫자가 닳아 있다. 많은 사람이 이 번호표를 받았을 것이다. 어제도, 그제도, 지난주에도. 숫자는 반복된다. 오늘 나에게 127번이지만, 내일은 다른 누군가에게 127번이다. 우리는 순서를 나눠 쓴다.
대학 수강신청도 비슷하다. 몇 번 타임에 신청하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1분 1초 차이로 원하는 수업을 듣거나 듣지 못한다. 순서가 전부다. 빠른 사람이 이긴다. 공평하면서도 불공평하다.
군대도 그랬다. 훈련소에 입소하면 번호를 받는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린다. "25번, 앞으로 나와." 나는 25번이었다. 내 뒤에는 26번이 있었고, 앞에는 24번이 있었다. 우리는 숫자로 줄을 섰다. 밥 먹을 때도, 훈련할 때도, 잘 때도. 숫자는 질서였다.
"123번 고객님." 이제 네 명 남았다. 핸드폰을 꺼내 본다. 메시지가 와 있다. 친구가 저녁 약속을 물어본다. 나는 답장을 쓴다. "7시는 어때?" 시간도 숫자다. 우리는 숫자로 만나고, 숫자로 헤어진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숫자다. 나이, 키, 몸무게, 연봉, 학점, 계좌 잔고. 우리는 숫자로 설명된다. "몇 살이세요?" "얼마 버세요?" "몇 학년이세요?" 대답은 언제나 숫자다. 숫자 없이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126번 고객님, 4번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한 여자가 일어선다. 이제 내 차례다. 나는 번호표를 손에 쥔다. 손바닥에 땀이 난다. 긴장하는 건 아니다. 그저 오래 기다렸다는 안도감. 곧 끝난다는 해방감.
"127번 고객님, 2번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일어선다. 번호표를 들고 창구로 향한다. 직원이 나를 본다. 아니, 나를 보는 게 아니라 127번을 본다. 나는 그에게 숫자일 뿐이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직원이 묻는다. 나는 용건을 말한다. 직원은 키보드를 두드린다. 딸깍, 딸깍, 딸깍. 업무는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5분이 지나고 끝난다.
"처리 완료됐습니다." 직원이 말한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한다. 은행을 나선다. 밖은 여전히 밝다. 사람들이 걷고 있다. 모두가 어딘가로 가고 있다. 각자의 순서를 기다리며.
나는 생각했다. 삶은 결국 기다림이다. 차례를 기다리고, 시간을 기다리고, 기회를 기다린다. 번호표는 그 기다림을 가시화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번호표를 쥐고 있다. 언제 불릴지 모르는 번호표를.
어떤 번호표는 짧고, 어떤 번호표는 길다. 어떤 사람은 일찍 불리고, 어떤 사람은 오래 기다린다. 공평하지 않다. 하지만 누구도 순서를 건너뛸 수는 없다. 그게 규칙이다.
집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내일은 또 어떤 번호표를 받게 될까. 병원일까, 은행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곳일까. 어쨌든 나는 번호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기다릴 것이다. 127번처럼, 혹은 다른 숫자로.
그렇게 우리는 산다.
숫자가 되었다가, 다시 사람이 되었다가.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고, 불리고, 처리되고.
반복하며.
그게 사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