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밤은 언제나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편안하다. 이 모순된 감정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데, 아마도 이 도시의 불빛들이 가진 이중성 때문일 것이다.
한강을 따라 걷다 보면 반포대교 아래로 빛의 분수가 떨어진다. 관광객들은 환호하지만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저 빛들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물에 떨어지는 순간 사라지는 빛처럼, 우리의 하루도 그렇게 흘러가는 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강변을 걷는 사람들을 본다. 조깅하는 사람,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 모두가 각자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그 리듬들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 평행선처럼 지나칠 뿐이다. 나는 그 사이를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걸까.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를 마시며 63빌딩을 올려다본다. 어렸을 때는 저 건물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줄 알았다. 아버지 손을 잡고 전망대에 올라가던 날을 기억한다. 유리창에 코를 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신기해했다. 이제는 주변에 더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여전히 저 건물만 바라보게 된다. 익숙한 것에 대한 애착일까, 아니면 사라져가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남산 성곽길을 올라간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적당히 높기 때문이다.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다. 도시를 내려다보기에 딱 좋은 높이다. 돌계단을 밟을 때마다 숨이 차지만 싫지 않다. 이 피로감조차 현실적이라서 좋다.
성벽에 기대어 서울을 본다. 불빛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강남 쪽은 유난히 밝다. 저곳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야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옆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운다. 중년의 남자였다. 우리는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올라왔고,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생각했다. 외로움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게라고. 서울의 야경을 볼 때마다 그 무게가 느껴진다. 수백만 개의 불빛 속에서도 각자가 섬처럼 존재한다는 것. 가까이 있으되 닿을 수 없다는 것.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 왜 우리는 더 외로운 걸까.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돌담은 차갑다. 손을 대보니 오래된 시간의 온도가 느껴진다. 조선시대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돌들이다. 그 시절에도 누군가 이 성벽에 기대어 도성을 내려다봤을까. 그때도 불빛들이 있었을 것이다. 촛불이나 등불 같은 것들. 지금보다는 훨씬 적었겠지만.
대학로 쪽으로 내려간다. 성곽길 입구 근처 벤치에 앉는다. 여기서 보는 야경도 나쁘지 않다. 남산만큼 높지는 않지만 적당히 도시가 보인다. 혜화동 로터리의 불빛, 극장들의 간판, 멀리 종로 쪽 빌딩들.
대학로는 여전히 활기차다. 밤 열한 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이 많다. 공연을 보고 나온 사람들, 술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청년들. 모두가 밤을 즐기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참여하지 않고, 그저 관찰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관찰자가 되는 쪽을 택했다.
옆 벤치에 한 커플이 앉는다. 그들은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들리지 않지만 분위기는 좋아 보인다. 여자가 웃고, 남자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나는 시선을 거둔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훔쳐보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남산타워의 불빛이 보인다. 저곳에서 본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몇 년 전 한 번 올라간 적이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장난감 도시 같았다. 작은 자동차들이 움직이고, 작은 불빛들이 반짝였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저 아래 어딘가에 내 집이 있고, 내 방이 있고, 내 책상이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의 고민도, 외로움도, 불안도 저 위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작은 불빛 하나일 뿐이다. 의미 있으면서도 의미 없다.
성벽 근처 작은 카페에 들어간다. 손님은 나 포함 세 명뿐이다. 카페 주인은 조용히 설거지를 하고 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창밖으로 대학로의 불빛이 보인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긴다. 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매일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회사에 가고, 같은 편의점에서 같은 도시락을 사고. 그러다가 가끔 이렇게 혼자 밤거리를 걷는 것. 그게 전부일까.
아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가끔은 친구를 만나고, 가끔은 영화를 보고, 가끔은 새로운 길을 걷는다. 그런 순간들이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든다. 반복 속의 작은 변주들.
카페를 나와 다시 성벽길을 걷는다. 밤공기가 차갑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낀다. 계절도 변한다. 도시의 모습도 조금씩 변한다.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오래된 가게가 사라진다. 하지만 성벽은 그대로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게 위로가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 어귀의 작은 분식집 불빛이 따뜻하다. 그곳에서는 아직도 누군가 떡볶이를 끓이고 있을 것이다. 김밥을 말고, 튀김을 튀기고. 그런 사소한 불빛들이 결국 이 도시를 지탱하는 게 아닐까. 거대한 네온사인보다, 높이 솟은 빌딩의 조명보다, 저런 작은 불빛들이 더 진짜 같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불을 켠다. 나의 집도 이제 도시의 불빛 중 하나가 된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 불빛을 볼까. 아마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켠다. 매일 밤.
옷을 벗고 샤워를 한다. 따뜻한 물이 몸을 적신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간다. 내일도 비슷한 하루가 올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산다. 반복하며.
침대에 눕는다. 커튼 사이로 불빛이 새어 들어온다. 맞은편 건물의 불빛이다. 저곳에도 누군가 살고 있다. 그 사람도 지금 누워 있을까. 아니면 아직 깨어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모른 채 이웃으로 산다.
눈을 감는다. 그래도 나는 이 도시의 밤을 좋아한다. 불빛들이 만들어내는 온기가, 비록 진짜 온기는 아닐지라도, 나를 위로하는 것 같으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을 주니까. 이 도시 어딘가에는 나처럼 밤을 걷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만나지 못하겠지만, 같은 밤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도 서울의 밤은 깊어간다. 불빛들은 하나둘 꺼지고, 새로운 불빛들이 켜진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시간을 이어가며 살아간다. 함께이면서도 혼자인, 외로우면서도 연결된 이 도시에서.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언젠간 또 이 도시의 밤을 걸을 것이다.
남산 성벽을, 대학로 골목을, 같은 거리를 다른 기분으로. 그게 서울에서 사는 방식이다. 매일 같지만 조금씩 다른 밤들을 견디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