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8시 30분. 나는 사무실 문을 연다. 자율 출근제라 일찍 올 수도, 늦게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8시 30분에 온다. 저녁에 와이프와 육아 바톤터치를 해야 하니까. 일찍 출근하면 일찍 퇴근할 수 있다. 그게 우리 집의 시스템이다.
에어컨 냄새와 커피 냄새가 섞여 있다. 이 냄새를 맡으면 월요일이라는 걸 안다. 주말의 기억은 엘리베이터 어딘가에 두고 온 것 같다.
"안녕하세요." 나는 인사한다. 몇 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모두 모니터를 보고 있다. 혹은 모니터를 보는 척하고 있다. 월요일 아침에 진짜로 일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그저 출근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내 자리에 앉는다. 컴퓨터를 켠다. 부팅되는 동안 휴대폰을 본다. 주말에 못 본 유튜브 영상이 쌓여 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영상들을 언제 다 보지. 아마 영원히 못 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안 봐도 살 수 있으니까.
김부장이 커피를 들고 지나간다.
그는 항상 커피를 들고 다닌다.
일하는 건지 커피를 마시러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커피를 마시는 게 그의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부럽지 않다. 거짓말이다. 조금 부럽다.
메일함을 연다. 87개의 읽지 않은 메일. 금요일 퇴근 후부터 지금까지 쌓인 것들이다.
제목을 훑어본다. [공지], [참고], [업무], [회신 요망].
나는 중요한 것부터 읽기로 한다. 그러나 어떤 게 중요한지 모르겠다.
모두 중요해 보이고, 동시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일단 커피를 마시러 간다.
탕비실에 타부서 박 책임이 있다.
그는 믹스커피를 젓고 있다. 아주 천천히. 마치 시간을 죽이는 것처럼.
나는 그를 이해한다. 우리는 모두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이다.
"주말 잘 보냈어요?" 내가 묻는다. "그냥 그랬죠.
박 책임님은요?" "저도 그냥 그랬어요."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렇다. 아무 의미 없는 말들. 하지만 그게 편하다. 의미 있는 대화는 피곤하다. 회사에서 진심을 말하는 건 위험하다.
자리로 돌아온다. 이제 정말 일을 해야 한다. 보고서를 열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작성하던 것이다. 읽어본다.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 금요일의 나와 월요일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팀장이 자리에 앉는다. 9시 7분. 자율 출근이라 누구도 출근 시간에 대해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8시 30분에서 9시 30분 사이에 다들 온다. 그게 불문율이다.
"다들 주말 잘 보냈지?" 팀장이 큰 소리로 말한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팀장도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출근했다는 걸 알리는 의식일 뿐이다.
10시가 되었다. 회의 시간이다. 회의실로 간다. 모두 노트북을 들고 온다. 회의 중에 딴짓을 하기 위해서다. 팀장이 말한다. "이번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공유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경청하는 척한다. 실제로는 창밖을 본다.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저곳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나처럼 회의실에 앉아 있을까. 아니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을까.
"신 책임, 어떻게 생각해요?" 갑자기 팀장이 묻는다. 그느 당황한다. 무슨 질문인지 모른다. "음... 좋은 방향인 것 같습니다." 그는 애매하게 대답한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다. 회사에서는 애매한 대답이 최고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중립. 안전 지대.
회의는 1시간 동안 계속된다. 30분이면 끝날 내용을 1시간 동안 늘어놓는다.
회의가 길어야 일한 것처럼 보이니까.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 일하는 걸까, 아니면 일하는 척하는 걸까.
점심시간이다. 해방의 시간.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탄다. 12시 정각이라 사람들이 많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빨리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산책하고 싶다고.
"뭐 먹을까요?" 최 책임이 묻는다.
"글쎄요. 어제 뭐 먹었죠?"
"그럼 오늘은 가볍게 칼국수?"
"좋죠."
우리는 항상 이렇게 결정한다.
어제 먹은 것과 다른 것. 하지만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회사 근처 식당은 다섯 곳뿐이니까.
결국 같은 메뉴를 돌고 돈다. 칼국수, 삼겹살, 김치찌개, 돈가스, 중국집. 무한 반복.
식당에 앉는다. 음식이 나온다. 먹는다. 대화는 별로 없다. 가끔 "맛있네요" 같은 말을 한다. 진짜 맛있어서가 아니라 침묵이 어색해서다. 우리는 동료이지만 친구는 아니다. 회사가 아니면 만날 일 없는 사람들.
식사 후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 앉아 30분을 보낸다.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좋다. 일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합법적인 휴식.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쉬는 게 아니라 쉬기 위해 일하는 건 아닐까.
오후 2시. 식곤증이 온다.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글자들이 춤을 춘다. 나는 화장실에 간다. 진짜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리를 뜨고 싶어서다. 변기에 앉아 휴대폰을 본다. 10분이 지난다.
자리로 돌아온다. 팀장이 나를 부른다. "잠깐 와봐요." 나는 긴장한다. 뭔가 잘못했나. 아니면 새로운 업무를 줄까. 둘 다 싫다.
"다음 주 발표 자료 준비하고 있죠?" 팀장이 묻는다.
"네, 진행 중입니다."
"금요일까지 초안 보내줘요."
"알겠습니다."
나는 자리로 돌아온다. 다음 주 발표.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금요일까지 나흘. 충분하다. 아니, 부족하다. 아니, 모르겠다. 일단 내일 생각하자.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똑똑할 것이다.
오후 5시. 슬슬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하지만 아무도 준비하지 않는다. 5시 30분 정각에 나가는 건 눈치가 보인다. 다들 적당히 56시 40분에서 50분 사이에 나간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나는 파일을 정리한다. 저장하고, 닫고, 정리한다. 내일도 할 일이 있다는 걸 확인한다. 일이 끝나는 게 두렵다. 일이 끝나면 새로운 일이 들어오니까. 차라리 하던 일을 천천히 하는 게 낫다.
가방을 챙긴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작게 인사한다. 몇 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사무실을 나선다.
엘리베이터에 탄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피곤해 보인다. 오늘 뭘 했지. 회의하고, 메일 보고, 보고서 쓰고. 그게 전부다. 하지만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지하철역으로 걷는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모두 같은 표정이다. 피곤하고, 무표정하고, 공허하다. 우리는 회사에 영혼을 두고 온 사람들이다.
지하철에 탄다. 앉을 자리가 없다. 손잡이를 잡고 선다. 졸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눈이 감긴다. 어느새 세 정거장을 지나쳤다. 놀라서 깬다. 다시 손잡이를 잡는다.
집에 도착한다. 현관문을 연다. 신발을 벗는다. 움직이고 싶지 않다. 저녁도 먹기 싫다. 그냥 이대로 누워 있고 싶다.
하지만 일어난다. 씻어야 한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까. 샤워를 한다. 따뜻한 물이 몸을 적신다. 오늘 하루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밖으로 나와 와이프와 간단히 저녁을 먹는다.
반찬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앉아서 먹는다.
TV를 켠다.
유투브나 넷플릭스에 컨텐츠를 본다.
하지만 대화를 더 많이하는 우리 부부는 중간에 끊고 안봐도 될 컨텐츠로 선택한다.
밤 11시. 침대에 눕는다. 내일도 월요일 같은 화요일이 올 것이다.
그리고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다시 월요일. 반복.
나는 생각했다. 회사는 이상한 곳이다. 싫으면서도 다닌다. 그만두고 싶으면서도 그만두지 못한다. 우리는 여기서 시간을 판다. 하루에 8시간씩. 일주일에 40시간씩. 인생의 3분의 1을.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그러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우리는 함께 견딘다. 월요일을, 회의를, 보고서를, 야근을. 함께 견디면 조금 덜 힘들다.
눈을 감는다. 내일도 8시 30분에 출근한다.
그리고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견디고, 반복하고, 적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