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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Jun 29. 2024

전통의 버스킹

출퇴근길에 마주하는 광희문은 바라보는 정면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성곽길이 제법 이어졌으나 오른쪽으로는 차도를 경계로 무 자르듯 단절되어 있다. 엄청나게 커다란 깍두기 모양의 돌이 겹겹이 층층이 쌓여져 그 거대한 것을 만들었고, 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굳건히 지켜오고 있음에도 매일 보는 나는 그 어떤 감흥도 느끼지 않는다. 또한 못한다. 


아주 가끔 광희문 안에 들어가 아래에서부터 위를 올려다볼 때의 웅장함을 즐기지만, 계절에 한 번 정도가 전부다.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지만 문화재란 이유로 손길 한번 건네지 않았다. 박물관에 있어야 할 그것이 너무 커서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은 이질감이 때때로 익숙할 따름이다. 


언제부턴가 퇴근길에 보게 되는 전통의 버스킹이 있다. 여든은 넘겼을 할아버지 한 분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대감이나 쓸법한 뾰족뾰족한 모자까지 쓰시고는 광희문 앞에서 춤을 추신다. 꼼꼼하게 준비해온 스피커에선 아랑이 들릴 때도 있고, 제목은 모르지만 분명 우리 전통 민요가 확실한 여러 레퍼토리가 이어진다. 


처음엔 그야말로 '미친 사람'인 줄 알았으나, 두 달 넘게 그를 목격하게 되자 이제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먼발치에서 그의 공연을 즐기게 된다. 어디선가 배운 춤사위는 아니지만 감정이 손끝과 발끝에 스며들어 무게감이 느껴진다. 노래도 가끔 부르지만 노래보단 춤에 더 특기가 있어 보인다. 오후 6시 30분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햇살은 강하고, 그의 손에 쥐어진 멋스러운 부채에 만들어진 그늘은 더없이 시원해 보였다. 


언제부턴가 거리 공연이 유행을 뛰어넘어 신드롬까지 다다른 때가 있었다. 어쩌면 여전히 유효할지 모른다. 음악을 좋아하고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무대는 반드시 필요한 필수 조건! 정식으로 갖춰진 무대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음악을 만들어낸다면 길바닥도 무대가 된다. 그건 정말이지 너무 멋있는 일이다. 하나, 종종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과 공간 주변에 머무는 이웃들을 생각하지 않고 펼쳐지는 공연은 제아무리 좋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폭력이고 소음이 된다. 뭐든지 적절한 수준과 상식적인 선에서 즐기는 것이 말 그대로 가장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르신을 등지고 열몇 걸음 걸으면 음악소리는 사그라진다. 그리 크지 않은 볼륨. 그리고 주변에서 쉬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가볍게 추임새를 도와달라는 익숙한 손짓. 무엇보다 그의 표정에 담긴 그 짜릿한 맑음은 보는 나를 웃게 만든다. 네 살 꼬마가 태어나 처음 탄산음료를 마셨을 때의 표정. 일곱 살 아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물을 크리스마스 날 아침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받았을 때의 표정. 바로 그 표정이다. 


그가 어떤 걸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할 수는 없겠지만, 덕분에 웃었던 마음을 음료에 담아 전해야겠다. 모든 예술에 무료는 없는 법. 음료만 건네주고 후딱 도망쳐야지. 잘못했다간 옆에서 같이 탈춤을 춰야 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향할 때. 환승역이면 으레 들려오는 그 국악 멜로디가 귓가에 어른거린다. 잊히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 전에 조금만 귀 기울이면 느껴질 일상 속 숨겨진 전통과 우리의 것을 더 즐기고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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