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관습과 흐름에 순응하는 듯, 하지만 쉽게 드러나는 예측과 기대를 전복하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부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대 한국 영화의 어떤 경향"으로 인쇄된 이 부제야말로 이 책의 방향성과 저자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라 감히 생각해 본다.
말 그대로 오늘날 한국 영화에는 특정 경향이라고 꼬집어 말할 만큼 편향된 혹은 두드러지는 흐름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적지 않은 분량을 통해 과거의 감독과 영화판이 걸어온 길, 그리고 가까운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는 시선에서도 이는 다채롭게 분포한다. 몇몇 참조 문헌을 통해 이것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자'와 '여자'로 대변되어 영화란 예술 장르를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로 이해하게끔 독자를 설득한다.
한때 관련된 일을 했었고, 여전히 영화를 좋아하는 애호가의 입장으로 저자의 의견은 꼭 한번 읽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비단 평론가의 시선이라고 국한시킬 필요가 없을 만큼 전방위적으로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한 한쪽으로 치우치는 기색 없이 놀라울 정도의 균형감과 시선의 묵직함에서 더더욱 그렇다.
아쉽다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거론할 만한 감독과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저자가 언급하는 여러 경향과 특이점들이 맞물리는 공통점들 속에는 중복되는 감독과 작품이 비일비재 등장한다. 관련된 심증으로 과거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도 이는 마찬가지다.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제작 시스템을 펼쳐온 20세기의 이야기는 '그땐 그랬지' 정도로 만족해도 좋을 것만 같다.
김기영, 임권택, 장선우, 박철수, 강우석, 강제규, 이명세, 김지운, 봉준호, 박찬욱, 김성수, 류승완, 나홍진, 장준환 그리고 이창동까지. 이 한 줄을 읽으면서 당신의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영화 속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면 반드시 읽어보길 바란다.
덧붙여 작품과 감독의 화려한 반짝거림 가운데 소제목을 활용하여 언급되는 유일한 배우 송강호의 연기에도 거듭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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