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ㅣ 이현정 ㅣ 21세기북스
살을 빼면 너무 말라 보인다 뭐라 하고, 살이 찌면 살 좀 빼야겠다고 뭐라 한다. 결혼하면 애 둘 낳아야지 하고, 비혼이나 딩크라 하면 이어지는 군소리는 짐작하는 그대로가... 맞다. 남들만큼 살아야 한다는 욕망. 내 집 한 칸은 마련해야 한다는 성취감.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고 늙어서는 연금 받아 가며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바람. 실패도 안돼 좌절도 안돼 남들 앞에서는 으르렁 어깨를 높이 세우고 있는 척 없어도 가진 척 하물며 동시에 서두르지 않고 분주하지 않은 채 유유자적 여유로운 척까지 해야 한다.
어려운 제목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제3자의 입장은 사실 우리 모두, 그리고 나 역시 피해 갈 수 없다.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아닌척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공부에 대한 압박을 밀어 넣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의적으론 두 아이가 공부와는 별개로 인생을 살아가도 진심 별 걱정 없지만, 공부는 결국 인생의 모든 선택의 밑바탕이 되는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하는 바, 에둘러 '기본만 하자'로 매듭을 짓고 만다.
저자는 서울대 교수 분야는 인류학과 교수다. '타인 지향적 삶과 이별하는 자기 돌봄의 인류학 수업'이란 다소 거창한 소제목이 표지에 인쇄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쉽다. 그리고 누구나 읽게 되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는 너는 이 세상은 왜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고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한국전쟁 이후 잠시 잠깐 곁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초고속 성장을 해서일까. 품앗이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어서 일까. 그야말로 부락의 개념, 동네의 개념으로 전 국민이 결속되어 있기 때문일까. 더욱이 인터넷, 스마트폰, SNS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일까. 다소 거친 해석일 수 있지만, 주체적으로 취향을 가꾸고 일군 적이 없는... 그야말로 제도의 물결에 떠넘기듯 살아온 비명 소리조차 억제된 시대의 고통이 그 배경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도 언급된 12년간 이어지는 공교육, 대학 진학, 군 입대, 연애, 결혼, 출산, 자식 부양, 부모로서 받고자 하는 노력의 대가, 그리고 노후로 이어지는 패러다임은 지난 우리 사회에 너무나도 깊게 뿌리내려왔다. 남들과 다른 것을 개성이라고 칭찬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마주할 땐 격려보단 걱정이 앞선다. 사실 격려도 필요 없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든 말든. 죽든 말든. 그건 말 그대로 '남 일' 아니던가. 그렇다고 이런 마음가짐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간섭하고 관여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경험한 이후 세 번째 세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관련하여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살률이다. 하루 3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살을 택한다. 이를 하루 24시간으로 나누면 40여 분에 한 명꼴로 우리 곁을 떠난다. 오죽하면 선택하곘냐만은, 그 또한 개인의 성격에 많은 근거를 둔다 하지만, 나로선 도저히 짐작도 못할 일이고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자살률 역시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의 오랜 연구 끝에 사회 분위기에 일부 영향이 있다는 사실은 절대 쉽게 지나쳐선 안될 부분이다. 개인의 자살, 그 바탕에 사회적인 간접적 책임이 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캠페인을 하듯 그야말로 품앗이를 하듯 일궈나가야 할 부분이다.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 자살을 부추기는 사회 그리고 자살을 보듬어 가야 할 구성원들의 노력, 성별과 세대 간의 갈등, 무엇보다 남들의 시선과 눈치를 신경 쓰지 않을 주도적인 취향, 무엇보다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리지 않을 간결함. 그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설명과 이해. 그리고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들이 책에 담겨있다.
타인의 욕망은 그대로 두고, 스스로의 욕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해철이 형 노래 제목처럼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고 울부짖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거울을 마주하고 스스로 답할 필요가 있다.
멋지게 살자.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정답도 오답도 없다. 책임만 지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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