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선순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by 잭 슈렉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우리나라 1인 가구는 무려 1,002만 1,413가구로 그 비율은 41.8%라 한다. ‘대가족’이란 단어가 아주 먼 과거의 말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인 가구를 위한 라이프 스타일이 새롭게 선보이고, 지자체는 관내 1인 가구를 위한 각종 복지 정책을 앞다퉈 내놓는다. 그 누구의 삶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댈 수 있을까. 저마다의 사연과 사정 그리고 선택을 통해 그들 모두의 삶은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대가족과 더불어 사라져 버린 단어 중 하나가 노처녀 노총각이다. 한때 ‘골드미스’란 말이 그 자리를 잠시 대체하는가 싶었으나 이제는 온 데 간 데 어디에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단어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20세기 끝자락에만 하더라도 20대 중반에 노처녀였던 것에 비하면 불과 20여 년 만에 기염을 토할 수준의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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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하여 선택적 비혼의 비중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결혼하였으나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도 보편화되고 있다. 인생을 자식에게 얽매여 소모하지 않고 오롯이 개인 또는 부부에게 집중하는 새로운 방식이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뿐만이 현상은 아닌,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흐름은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의 풍토는 젊은 세대에게 안락한 미래를 약속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삼포세대'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을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장의 월급만으로도 온 가족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던 시대였다. 돈의 가치가 하락하고 사람들의 욕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시대의 공기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등장하는 모든 배우가 열연을 펼쳤다. 4부작 단위로 끊어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에 이어지는 계절의 흐름을 우리 인생에 빗대어 연출한 노련미도 돋보인다. 제주도라는 지역적 특성을 대표로 남녀 차별이 만연했던 시대의 모순도 꼬집었다. 그 속에서 사랑하는 감정을 누렸고, 결혼을 위해 가출을 감행했으며, 결혼해서 아이들 잘 낳고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차분하게 이어진다.


어릴 적에 평생 효도 다한다지만, 그렇게 부모 속을 썩이는 자식들의 행태를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매한가지다. 열렬한 사랑의 결실로 부부가 되었고, 그에 못잖은 희생과 노력으로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를 길러주신 부모님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다정하게 손 한 번 잡지 아니했고, 뜨거운 가슴을 느낄 만큼 진한 포옹도 나누지 못했다. 진심과 다른 말을 뱉었으며, 언제나 뒤늦게 후회만 했다.


십수 년 전 후배는 결혼을 앞두고 마련한 술자리에서 딩크족으로 살고자 하는 계획에 대해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어렵게 꺼낸 질문에 "너도 태어났잖아"라는 짧은 대답을 건넸고, 대답을 들은 후배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맞다. 우리는 태어났다. 이 세상에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태어나 저마다의 이름을 얻고 성장하고 직업을 갖고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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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환경은 다를 수 있으나 낳아주신 부모님이 계시고 운이 좋으면 형제·자매와도 함께 할 수 있다. 학교에서 사귄 친구, 사랑에 빠진 이성, 성공과 실패 그리고 좌절과 포기를 맛보면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시작이 있는 모든 것들엔 반드시 끝이 있게 마련이지만, 아직 그 끝을 경험하기 전이라면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하고 행복해하는 것이 맞을 것만 같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종족을 번식하는 일은 문명을 이룩해낸 인간이라 하더라도 응당 따라야 할 순리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자 선순환을 이루어가는 커다란 연결고리 그 자체의 반복이다. 애니메이션 <코코>에서는 이승에서 기억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하지 않게 될 때, 저승에 머물러 있는 귀신이 완벽하게 사라진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이는 고인의 유품, 사진, 추억들로 얽혀 오랫동안 유지되는 인연을 맺은 관계라면 응당 수긍할 만한 대목이다.


자연에서 만들어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윤회의 일부에서 비약적으로 너무 많은 계산과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은 잠시나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영악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지배당해 갈라치기와 더불어 남들과 비교하는 행태에 허우적거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생각보다 세상은 살만하다. 욕망을 지피는 대신 적당한 욕심으로 적극적인 도전을 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분명 있다. 물론, 가난의 대물림 등으로 무거워지는 고충을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삶의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는 작은 노력의 도모가 훗날 커다란 결실까지 다다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밝히기에 멋쩍으나 필자는 선천적 질환으로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은 채 태어났다. 평생을 하나의 눈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반만 볼 수 있는 대신 두 배 더 깊게 볼 수 있다는 나름의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초긍정의 마법에 걸린 것도 아닌데 태어났다는 사실, 살아가고 있다는 순간이 그저 고맙고 행복할 따름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알뜰한 아내와 함께 두 아들을 만났고 오붓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치고 힘들 때도 물론 있다. 아쉽고 속상할 때도 여지없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선택을 미루거나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가장 노릇을 할 따름이다. 내 부모가 그러했듯이. 우리 모두의 부모님이 그랬듯이. 나 또한 그 선순환의 일부가 되어 차분하게 이어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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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를 관통하는 여러 의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아이가 부모가 되고, 자식을 낳아 살면서 갖게 된 희생의 시간이라 본다. 제주도 방언으로 ‘수고하셨습니다’를 제목으로 둔 이유도 그런 연유가 아닐지 짐작된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의 희생, 온갖 고생과 핍박을 받고 자라 어른이 되고 또 누군가를 낳아 기르게 될 우리의 삶, 그 속에서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날 예쁜 아이들까지. 모두가 서로에게 건네는 ‘수고했다’라는 말로 들린다.


길을 잃은 아이는 부모를 찾는다. 직업교육을 통해 노숙자도 일상으로 복귀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조율되고, 어르신들의 보금자리 또한 이웃들의 발걸음으로 온기를 잃지 않게 된다. 사랑하고 평생을 약속하고 새 가족을 만나 애틋한 삶을 이어 나간다. 추억이 쌓인다. 작별할 순간도 다가올 것이다. 마치 화석처럼 그것들은 단단하고 굳건하게 펼쳐질 것이다.


꿈같은 풍경이다.

그런 세상이 물 흐르듯 이어지고 만들어지면 좋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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