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죽음을 인터뷰하다 ㅣ 박산호 ㅣ 쌤앤파커스

by 잭 슈렉

허망하게 삶을 등져버린,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 마왕 신해철에게 죽음을 가장 먼저 알려준 대상은 시름시름 앓다 죽은 병아리 얄리였다. 내게 죽음을 가장 먼저 알려준 대상은 파트라슈와 함께 힘든 유년기를 보냈던 네로였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숙제를 가장 먼저 하고 동네 곳곳에서 실컷 놀다가 저녁 5시만 되면 닥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그날의 만화를 빠짐없이 봤다.


<플란다스의 개>도 마찬가지였다. <개구리 왕눈이>처럼 슬픈 분위기가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네로와 파트라슈에게 좋은 날이 올 거란 희망을 안고 봤다. 그런데 결국 네로는 죽었고, 죽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실감했다기보단 그저 그 상황을 허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시작하는 모든 것엔 끝이 있다. 태어난 모든 것들은 죽는다. 작게는 개미나 모기부터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하물며 행성도 별도 태양도 언젠가는 죽는다. 사멸한다. 사라진다. 그 존재의 흔적이 깨끗하게 지워진다. 새벽 3시부터 시작된 진통 그리고 오전 10시에 태어난 첫째를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desert-279862_640.jpg


가족분만실에서 나는 아내와 단둘이 그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더욱이 온몸에 피가 묻은 채 나타난 녀석과의 첫 만남은 잠깐의 감동 이후 격한 슬픔으로 치달았다. 이렇게 나를 내 엄마가 낳으셨구나.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럴 일이야 없어야겠지만 설령 저 아이의 생명을 담보로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단 1초도 망설임 없이 죽겠다고 다짐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달가운 것만은 결코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조금은 미리 공부하고 대비하고 알아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런 평소의 생각이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질 줄이야. 저자는 모두 다섯 명의 죽음과 관련된 인물과의 인터뷰를 책으로 만들었다. 동의하는 부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죽음이란 과정을 주제로 제법 깊은 심도로 차분하게 다가가는 진행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요양보호사, 장례지도사, 펫로스 상담사, 신부, 호스피스 의사로 이어지는 흐름은 죽음이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아주 먼 미래에 마주할 일이 아니란 것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수시로 언제나 나와 가족, 친구에게 다가올 일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무엇보다 죽음을 통해 내가 사라지고 난 뒤의 일상에 대해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 한다고 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요양보호사는 가족을 보호하며 수필을 써나가며 죽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소 억척스러운 그녀의 일상은 읽어 내려가기 힘들 정도로 사실적이었고, 지켜보기 미안할 만큼 녹록지 않았다.

영화 <파묘>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실제 모델인 장례지도사는 우리 사회에 깃든 장례문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죽음에는 세 종류의 죽음이 있다고 한다. 당하는 죽음, 받아들이는 죽음, 맞이하는 죽음이다. 갑자기 찾아오는 당혹스러운 당하는 죽음, 질병 또는 상해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 그리고 차분하게 준비해서 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죽음까지... 그의 답변은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고인과 유족이 경험하는 객관적인 것들에 기초를 두어 유독 더 끌림이 강했다.


tree-2487889_640.jpg


펫로스 상담사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응당 필요한 역할을 차분하게 이어간다. 저자와 그의 대화를 듣다가 불현듯 과거의 일화도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봄이었다. 마당에서 기르던 치와와 닮은 똥개 한 마리가 있었다. 남산으로 조깅을 다녀온 뒤 등교 준비를 하는데 그야말로 똥 마려운 개처럼 발광을 하길래 목줄을 풀어줬다. 집 앞에는 당시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소방도로가 있었다. 누렁이가 나가고 5분이나 지났을까. 자동차 급정거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살펴보니 오른쪽 앞다리가 부러져있었다. 너무 놀랐다. 아버지께 뒤를 부탁하고 등교를 했다.


저녁에 아버지께서 집에 오셨고, 당시 돈으로 약 30만 원의 수술비가 들면 생명은 연장시킬 수 있었으나 잘린 다리를 접합할 수 없다 하여 안락사를 시켰다고 했다. 감당할 수 없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데 갑자기 누렁이 생각이 떠올랐다. 사내 녀석이 그것도 수업 시간에 갑자기 울컥해서 펑펑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천주교 신부의 이야기는 다소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종교적 차이라고 매듭짓고 싶다. 호스피스 의사는 장례지도사와 나란히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외면하거나 피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되 가장 효율적이고 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과정에 대해 들려준다.


첫째가 태어날 땐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가, 둘째가 태어나자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무게감이 결국 내 두 어깨에도 고스란히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빠듯한 형편이지만 알뜰한 아내 덕분에 그래도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다.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주는 것만 같아 볼 때마다 그저 흐뭇하고 듬직하다. 곧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한 살 아래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 살고 있다. 성장하는 아이들과 저무는 부모의 곁에서 나는 수시로 태동하는 생명을 느끼고 또 다가올 노후를 미리 가늠한다.


그렇게 일상은 흐르나 싶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8228478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서일기] 호러의 모든 것 l 김봉석 l 상상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