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 ㅣ 김여환 ㅣ 포레스트북스
새벽 6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었다. 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둘째 이모의 전화를 받았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택시를 탔다. 아침 7시를 20분 남겨둔 도심 거리는 몹시 한산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중치료실로 향했다. 바로 전날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서약한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담당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피곤해 보이는 간호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열여섯에 입주가정부로 평생을 살아온 큰이모였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 자식이 있을 리 없다. 여든 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 큰이모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아침 7시 30분, 담당 의사는 사망선고를 내렸다. 아직 귀는 열려 있으니 고인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마음껏 하라고 했다. 북받치는 슬픔으로 이도 저도 아닌 말들이 쏟아졌다. 고맙다는 말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미안하단 말이 대부분이었다. 큰이모의 유일한 혈육인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엄마의 건강을 위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직 따뜻한 큰이모 손을 얼마나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스꽝스러운 믿음이라 해도 괜찮다. 영화 <코코>의 설정에 따라 나만큼은 큰이모를 평생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꼬박 1년하고 7개월이 흐른 지금도 큰이모가 내게 지어준 웃음이 기억난다. 내색 크게 하지 않던 표정도 생생하다. 어쩜 그리 엄마랑 닮았는지, 웃으면 작아지는 푸근한 눈매가 엄마의 얼굴 너머로 비친다.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여러 가지다. 준비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고, 오랫동안 가족을 힘들게 하면서 맞이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특정 질환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삶과 죽음 사이, 잠시 머물면서 죽음을 차분하게 준비하는 곳이 바로 호스피스 병원이다.
저자는 그 호스피스 의사로 여러 죽음을 통해 경험한 이야기를 책을 통해 들려준다. 대부분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다행이라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나름의 여유가 있다는 점이다. 불행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고통으로 뒤척이며 그날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고통은 비단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머무르지 않는다. 금전관계, 깊은 감정의 골, 병으로 인해 그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자의 태도, 미처 이루지 못한 것들, 남겨질 가족에 대한 연민들까지... 저자가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죽음을 직전에 둔 시점을 제외해도 이질감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보여주는 진심이 애처롭다. 시간을 두고 그들의 진심을 헤아리는 저자의 태도가 고마운 지점이다. 고통을 덜어주기보다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해 주는 마음, 그리고 그들이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에 결코 외롭지 않게 보살펴주는 호스피스 의사의 일상은 가볍게 다음 장으로 넘기는 한 장의 종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솔직히 어렵다. 그야말로 타인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우리 이웃이지만 나와 내 가족은 아니다. 아직 부모님은 물론, 장인 장모님도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친구와 지인의 황망한 죽음을 경험했지만, 과연 나는 그 순간 차분해질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괜히 가져본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나조차도 언젠가는 그 죽음의 흐름에 거슬리지 않고 결을 나란히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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