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 ㅣ 정우영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 ㅣ 정우영 ㅣ 워크룸 프레스

by 잭 슈렉

용돈을 모으고 모아 카세트테이프 하나 사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 한 달에 한 장만 살 수 있었다. 앞뒤로 닳도록 들었다. 속지도 꼼꼼히 읽고 구석구석 살폈다. 몇 년이 흘러 그 자리는 CD가 차지했다. 카세트테이프보다 두 배 이상 비쌌지만, 음악 듣는 방법이 훨씬 편리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부클릿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LP가 부클릿은 킹왕짱 제일 좋았다.


음반을 수집할 정도의 경제적 능력은 못됐다. 정말 사고 싶은 앨범, 정말 오래 듣고 싶은 앨범만 골라서 샀다. CD가 70%, 카세트테이프가 20%, LP가 10% 비중으로 채워졌다. 지금도 살만한 앨범이 있으면 CD를 산다. 아내와 두 아이는 이해 못 하지만, CD로 음악을 듣는 일은 여전히 내게 매력적이고 소중한 일이다. 그런 고집으로 단 한 번도 mp3 플레이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보급화되면서 약간의 베스트앨범을 담아두고는 이동할 때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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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소유의 가치는 공유의 미덕으로 달라졌다. 공유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소유하는 맛에 비하면 확실히 견줄 것은 못된다. 내 것을 가져보는 일, 그것이 온전히 CD나 LP와 같은 물질적 형태였을 때의 만족감은 경험해 본 자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귀에서 멀리하는 앨범을 중고로 팔거나 또 반대로 중고로 구입하기도 한다. 중고 제품의 가치가 확연히 드러나는 이슈로 인해 중고 앨범 시장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나 역시 중고로 앨범을 팔아 치킨을 사 먹기도 했고, 또 우연히 발견한 중고 앨범을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순간도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더 이상 듣지 않고 처분하기 직전의 앨범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제목 또한 이처럼 파격적이다. 보통은 소중하게 얻은 앨범 또는 무덤까지 갖고 갈 앨범들을 운운하는 마당에 저자는 버리기 직전의 앨범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앨범에 깃든 설명은 지극히 사유적이면서 또 독특하다. 장르도 전 세계를 아우르고, 분위기와 뮤지션의 느낌도 제각각이다. 결코 그들의 실력 또는 앨범의 만듦새가 나쁘다고 폄훼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은 저자와의 인연이 거기까지였다는 것을 그렇게 넌지시 던져 놓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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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편집 디자인이 가장 눈길을 끈다. 왼쪽 페이지에는 앨범 전체가 가득 채운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진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앨범도 있고,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음반도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보편적인 결에서 한 뼘 벗어난 별난 이야기가 은근 재밌다. 시원한 디자인과 함께 읽어 내려가는 속도가 제법 빠르다. 다만, 저자가 그 앨범을 손에 쥐고 즐기고 다시 버리기까지의 진심은,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수긍될 만큼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시대가 달리 되어 그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장르와 소재가 콘텐츠가 되고 있다. 영수증을 모은 것도 책이 되고, 오랜 시간 별도 주제 없이 이것저것 모은 소품들도 책이 된다. 그리고 이젠 버리기 직전의 음반도 책이 된다.


이런 책들을 읽으며 나 역시 아직 그런 형태로 주제를 묶지 않은 나만의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샘솟듯 피어오른다. 물론, 그 동기부여가 단행본으로 태어나기까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라 더 흥미진진하다. 남들이 버린 것도, 우연히 내가 주운 것도, 죽자고 꿰찬 것도, 그야말로 무덤까지 갖고 갈 것들까지도... 애정을 갖고 더 오래 들여다봐야겠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858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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