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휴머니즘이다 고로 존재한다 ㅣ 백지희 ㅣ 빅마우스
가위가 필요해서 가위를 하나 샀다. 그런데 가위가 그만, 가위 모양으로 맞게 성형된 투명 플라스틱과 종이로 밀봉된 형태였다. 얼마나 단단하게 포장이 되어 있는지 도저히 가위나 칼이 없으면 포장을 개봉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집에 가위가 있는 사람들도 이 가위를 사겠지만, 도대체 이렇게 포장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온라인에선 '가위 없어서 가위를 못 꺼내요' 또는 '악마가 만든 쓸데없이 튼튼한 포장' 등으로 까임을 당하는 사례다. 참고로 이러한 포장 형태를 블리스터 포장이라 한다.
물건은 개미 코딱지 만한 대 과대포장이 적잖은 경우를 우린 많이 본다. 기존의 것과 분명 차별화된 디자인의 전화기인데 수화기가 어째 쓰면 쓸수록 불편한 전화기도 있다. 얼핏 보면 예쁜 앞치마인데 막상 쓰려니 도저히 당장 버리지 않고서는 못 베길 그런 제품들도 허다하다. 외형만 좋다고 디자인이 아닐 터! 디자인은 반드시 그 실용성과 기능을 겸해야 할 터! 그것이야말로 디자인의 본래 가치가 제대로 드러나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ESG를 비롯, 감정의 디자인, 공감의 디자인을 타이틀로 책을 통해 여러 사례를 들려준다. 깜짝 놀랄 만한 것들도 있고, 익히 알고 있는데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구나 싶어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디자인도 있다. 무엇보다 각각의 디자인에 담긴 내용과 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가 겸해지니 마치 거대한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다.
저마다 사연이 있고 기능이 있으며 디자인으로서 가치가 있게끔 기승전결이 그야말로 완벽한 사례들은 비단 디자인이란 가치가 만연한 선진 국가 또는 자본주의 사회에만 깃들어 있지 않는다. 책을 시작하는 첫 번째 사례 '솔라카우'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태양광 에너지로 전기를 충전하고 이를 통해 콩고, 케냐 등의 국가에 부족한 전력난을 해소한다.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웠다. 다소 디자인이라고 하기엔 그 얼개가 몹시 허술한 소 모양이다. 등에는 태양광 패널이 있고, 아래에는 너무 조악하게 보이는 여러 갈래의 소젖이 보였다. 첫 사진은 다소 멀리서 촬영해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데 몇 장을 더 넘기자, 소 젖은 짧은 원통형 모양의 충전지다. 낮 동안 충전된 충전지를 통해 각 가정에 부족한 전력을 돕는 것이다. 또한 전력의 충전 양과 소의 개체수(!)를 학교를 중심으로 분배해서 매일 전기를 위해 학교에 나오게끔 디자인의 연장까지 고려했다. 무엇보다 소 모양을 연상케 하여 지역주민의 시스템 이해도와 접근성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다.
맞다. 이런 거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게 아닌! 그저 비싸 보이고 고급스러움만 깃듦이 아닌! 실생활 그리고 그 지역의 사람들 삶까지 깊게 관여하는 디자인이야말로, 완벽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전기가 없이는 단 하루는 고사하고 단 10분도 못 살 지경에 이르렀다.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온풍기는 기본이고, 스마트폰 와이파이는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 버렸다. 시원한 음식을 보관할 냉장고, TV와 전기로 움직이는 버스나 지하철, 하물며 자가용까지도 있다.
이 외에도 감자로 만든 맥주, 소방관을 위한 재활용 디자인, 정말 멋진 스타일의 죽음의 바느질 클럽, 서점, 호텔, 아트워크 등이 부드럽게 소개된다. 그저 예쁘고 화려하고 세련된 것만을 추구하는 디자인이 아닌, 자연과 인간, 삶과 취향, 나아가 미래까지 고민하는 여러 디자인의 가치와 노력 땀방울이 책에 담겨 있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378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