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의 '나를 위한 요리'에 담긴 방향(芳香)

by 잭 슈렉

어쩌다 보니 5평 남짓 작은 술집을 운영하게 됐다. 준비도 부족했고 연일 실수가 이어졌지만,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이 펼쳐져서 마음이 놓였다. 종류는 간소했지만 안주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맛은 둘째 치더라도 가게를 찾아준 손님의 진심을 등져버리는 짓만 큼은 안 하기로 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장사가 손에 익자 여유는 그전에 비해 풍부해졌고, 가끔은 영업 끝난 가게에서 술 한 잔 들이켜고 퇴근하곤 했다. 내가 마시는 술인데 안주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깡소주도 마셨고 팔다 남은 재료를 대충 안주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재료상에 갔다가 냉동고에 가지런히 놓인 물만두가 눈에 띄었다. 모두 세 종류가 있었고 물만두 개수는 동일했다. 컬러 인쇄가 된 포장지의 제품은 한 봉에 만 원이었고, 흑백으로 인쇄된 제품은 7천 원이었다. 그리고 봉지에 그 어떤 인쇄도 되지 않고 명함 크기로 제조정보가 인쇄된 물만두는 5천 원이었다. 가장 저렴한 걸 골라 혼술을 할 때면 예닐곱 개 끓는 물에 데쳐서 먹곤 했다. 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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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요리사> 시즌 2의 최종 우승자 최강록의 마지막 요리가 연일 화제다. '나를 위한 요리'에서 그는 일찍이 장사하며 경험한 숱한 실패와 녹록지 않던 밤의 시간을 90분간 추억했다. 그날 만들어서 그날 먹어야 가장 맛있는 깨두부를 만들었다. 팔다가 남았다고 다음날로 넘길 수 있으니 만든 사람이 먹어 치우는 거다. 거기에 가장 좋아아한다는 우동국물에 온갖 팔다 남은 야채를 때려 넣고 국을 끓였다. 그리고 파란색도 아닌 빨간색 소주 한 병을 그야말로 취침주로 곁들였다.


음식 장사도 아닌 술집, 그것도 규모도 작고 기간도 길지 않았던 내 경험을 어디 그에게 견줄까. 하지만, 그가 뱉어내는 말과 눈빛 그리고 그 시절을 회상하는 공기에 아주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혀끝에서 퍼진 말들 중 '척'과 '담금질'은 내게 있어 채찍처럼 다가왔다.


맞다. 연쇄 조림마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조림을 즐긴 그는 스스로 고백하듯 조림을 잘 하는 척을 했는지 모른다. 나 역시 글 쓰는 순간을 즐긴다는 변명을 방패 삼아 늘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어쩌면 내게 있어서 글을 잘 쓰는 척 따윈 없었다. 일상에서 글이란 걸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현저히 적기 때문에 괜히 있어 보이는 척을 했다. 더욱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시간을 나는 내게 허락한 적이 없었다. 구태여 핑계를 대자면 십여 년 전부터 다닌 도서관이 유일한 그것이었을지 모른다.


더 맛있는 요리를 채택하고, 만든 의도를 깊게 헤아리는 두 명의 심사위원을 통해 선발된 우승자의 요리는 맛과 의도 두 측면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음이 틀림없다. 만약 주제가 '나를 위한 요리'가 아니었다면 요리 괴물이 압도적으로 우승을 거머쥐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의 순두부찌개도 충분한 서사와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음식이었다. 하지만, 최강록의 요리에는 개인 서사와 추억에 머물지 않고 요리를 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회한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에는 눈속임이나 입바른 소리, 더욱이 얕은 잔꾀도 몸집을 부풀리기 위한 으르렁거림도 없었다. 그야말로 진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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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부 젊은 세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주요했던 가치는 바로 정의로움이었다. 일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무슨 정의까지 찾아야 할 필요까지 있나 싶지만, 최소한 <무한도전>은 여러 미션과 콘텐츠를 통해 정직한 일직선을 걷기를 스스로 자처했다. 그래서 패배에 수긍했고 그것으로 매듭짓기를 반복했다.


공정성을 전면에 내세운 <나는 가수다>가 무려 첫 번째 회차에서 엄청난 이슈에 휘말렸던 것은 스스로 만든 규칙을 무너뜨렸기 때문이었다. 공정과 정의가 사라진 현실에서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서라도 대리만족을 얻고자 했었다. 그것은 수시로 제법 그럴싸하게 구현됐으나, 대부분은 울타리 어디에선가 좌절의 모습으로 쓰러지기 일쑤였다. 최강록의 요리에는 짐짓 우리가 바라던 그 정의와 가장 기본적이라고 이해할 만한 가치가 배어들어 있었다. 화려한 꽃가루를 닮은 기교가 가미되었다면 결과는 아마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양심 냉장고> 또한 마찬가지 맥락이다.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아닌 우리 모두와 같은 시민의 진짜 양심에 우리는 환호했다. 마찬가지다. 최강록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의 시민임을 그의 요리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식당과 술집의 주방에서 쉴 새 없이 땀 흘리며 칼질을 하고 불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 그의 결승전 요리는 그 무엇보다 더 값지다.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며 격려하고 칭찬할 여유를 우리는 조금이라도 마련해야 할지어다.


덧붙여, '파이널 7'에서 선보인 그의 요리 또한 잠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180분이란 긴 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요리를 만들어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규칙에서 그는 단 하나의 요리로 승부를 걸었다. 거의 모든 심사에서 일관된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깊게 심사숙고한다는 점이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의 긴 생각은 주제와 의미,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확한 명분을 만든다. 속도전이 생명과도 같게 느껴지는 오늘날 그가 보여주는 느림의 미학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필시 맛이 중요한 요리임에도 만드는 의도를 헤아리는 심사위원의 잣대가 감히 맞는 것이라면, 결과물도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의 시간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만 같다. 조금 느리지만 한 번 더 생각해야겠다. 조금 더뎌도 결과를 향해 전진한다면 내가 추구하고 생각한 것들을 관철시킬 뚝심을 지녀야겠다. 속도 보다 의미를 품은 방향(方向)안에 방향(芳香)이 깃들기를 바란다. (피천득의 수필에서 인용된 문구를 빌려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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