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by 잭 슈렉

우리는 꼬박 2년을 함께 학교를 다녔다. 신체적 결함으로 군 면제를 받은지라 입학부터 졸업까지 알량한 시간을 동반한 것이다. 일절 시야에 들어오지 않던 상대가 어느 날 세상의 전부처럼 내게 다가온 날이 있었다. 2년 차 6월의 시작과 함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요동치고 말았다.


흔하디흔한 서사가 이어졌다. 좋아하는 마음이 싹을 틔웠으나 전할 길 만무했다. 겉돌았고 맴돌았다. 정확히는 그 어떤 징후도 삼간 채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도저히 더는 참을 수가 없어 마음을 내비친 건 졸업 이후였다. 옹색했고 궁색 맞았다. 고백은 정체를 드러냄이 아니어야 하나 그때 나는 그랬다. 내 정체란 상대에 대한 진심을 표현하거나 설명함이 아닌 그간 상대의 곁에 내가 있었음을 애꿎은 낱말들로 꾸역꾸역 포장하는 수준이었다.


보기 좋게 차였다. 거기서 그만두었다면 좋았을까.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다. 곡예를 펼치고 주접과 푼수를 연이은 행태를 반복했다. 한 편으로는 내가 불쌍하게 보였을 수도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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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아이 젖 주듯, 동정이었을까. 우리는 손꼽을 정도의 시간을 가졌다. 흔히 그것을 외래어를 빌려 데이트라고도 한다. 묻지는 못했으나 내겐 딱 그 데이트 같았다. 적당한 온도와 햇살, 그 사이로 파고드는 미풍의 고운 보드라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웃었고, 그 순간을 박제하고 싶을 만큼 따사로웠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돌이켜보면 그때 상대는 내게 기회라는 것을 주었으나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둔했고 배타적이었다. 조금이라도 욕망에 눈꺼풀이 뒤집어질 정도로 상대를 농밀하게 바라봤다면 나는 그 기회를 획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지나갔다. 남은 것이라고는 짧은 전화 통화로 전해 들은 작별 통보뿐이었다.


먹고사는 일이 바빴다. 그래서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났다. 곧 쉰을 바라보는 나이, 타국에서 밥벌이를 하는 동기의 입국을 계기로 갓 스물 우정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결혼과 동시에 자취를 감춘 상대도 모처럼 자리에 나타났다.


여전했다. 변한 것이 없어서 안심을 하면서도, 뚫어져라 바라볼 용기가 없어 힐끗 곁눈질로 몇 번을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내 기준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4시간 남짓 이어지는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 상대와 눈길이 마주친 것은 세 번이 전부였다. 그때마다 나는 겁쟁이가 되었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죄를 진채 고개를 서둘러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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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듯 상대가 나를 생각하리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다. 그것은 미련도 후회도 아쉬움도 앙금도 아닌 일방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의 눈길이 일직선으로 맞닿을 때의 감정은 괜스레 스스로에게 자책을 가져다주었다. 서둘려 자리를 박차고 먼저 귀가하는 와중에도 상대에게 인사 한마디를 전하지 못했다. 여전히 나라는 존재는 오래전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반성해야만 할 일이, 맞다.


시간이 약이란 말을 믿는다. 살면서 그 특효를 몇 번 겪었다. 하나 아주 가끔은 시간의 영속성과 관계없이 남게 되는 화석이 있다. 다행이라면 가족이 잠든 자정 넘은 시각에 들어선 집의 온기였다. 그렇게 나는 잠시 어리석었던 청춘의 책장을 넘겨보고는 다시 현재의 지면으로 복귀했다. 아직 책의 끝은 쓰기 전이다.


어느 수필가는 그리워하면서도 못 만나고, 또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난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허락된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거라 회상했다. 나 역시 만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보고 싶어도 아니 만나야 할지어다. 함께 보낸 시절이 처음이고 근래가 두 번째라면, 앞으로 세 번째는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구태여 상대라고 부르는 것은 새삼, 인연이란 말이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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