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ㅣ 장석주, 송희복 ㅣ 글과마음
앞서 그의 에세이 <스물 즈음>과 함께 대여한 책이다. 거주하고 있는 자치구 전체를 통틀어 그의 책은 모두 네 권이 있었고, 앞서 읽은 책과 지금 이 책을 제외한 나머지 두 권은 문제의 소설을 포함한 소설이었다. 소설에 별로 취미가 없는지라 일절 관심을 껐다. 그가 뱉어낸 여러 말들을 평론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 책이 마광수라는 사람을 조금 더 밀접하게 이해할 수 있는 돋보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읽어 내려갔다.
한편으로 그가 대학교수였기 때문에 표적이 되었다는 본문의 지적에 으레 수긍이 뒤따랐다. 그 상대가 연예인이든 지식인이든 소위 잘나가는 인물을 폄훼하고 공격하기를 서슴지 않는 오늘날의 풍토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깊은 충격과 내적 고통을 겪으며 우울증을 대표로 복합적인 질병에 허우적거리다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무슨 대통령도 아니고, 텔레비전만 켜면 온종일 얼굴 내비치는 유명인도 아닌데 도대체 그가 쓴 글이 그렇게 지탄을 받아야 하는 일인가 싶다.
그야말로 다채로운 주제와 소재들이 난립하는 시대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더더욱 그 시간차를 앞당기고 있다.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정보의 바다라고 표현했는데, 이제는 원하는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도적인지를 분별해야 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분량이다.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대다. 고로 나는 종종 일절 관심 없는 분야에는 정말 개미 눈곱만큼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만 관심을 갖고 즐길 시간이 없는 마당에, 그 반대에 있는 것까지 품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지극히 주관적 행태에 지나지 않지만, 일개 대학교수가 쓴 소설 하나에 온 국가가 들고 일어서 그를 표적 삼아 미디어 폭력을 가했다. 어느 정치인 자녀의 표창장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갈라 치기의 시대다. 이는 오랜 독재 정권의 유지를 위해 전라도와 경상도를 갈라치기 했던 그 시절부터 시작된 몹시 거북하고 역겨운 행태다. 지역감정은 이후 남한과 북한의 사상으로 번져나갔다. 프로 스포츠를 통해 연고지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을 나눈 것은 그야말로 예리한 술법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더는 지역감정이 과거의 무게감으로 어필되지 않는 시대다. 그러자 등장한 것이 부자와 가난, 그리고 남자와 여자, 청년과 노년 등으로 그 형태를 달리해 나가고 있다.
더 오래된 출처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내가 최초로 본 것은 어느 만평에서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데리고 어딘가를 가고 있다. 그러자 사람들이 타고 가면 좋을 것을 하고 비아냥 거린다. 아버지가 타자 어린 아들 고생시킨다고 아버지를 욕하고, 아들이 타자 어른 공경 안 한다고 아들을 욕한다. 결국 둘 다 타자 동물 학대라고 욕한다. 젠장. 어쩌라는 것인가.
맞다. 표적이 되면 당할 수밖에 없다. 잘못한 게 없어도 당해야 한다. 과녁이 된 이상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없다. 너덜거리는 걸레짝이 된 이후 사람들이 잊고 나서야 수습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이 여기저기 곳곳에서 바람결에 전달되는 소문의 시대였다면 되려 좀 나았을까. 1초 단위로 실시간 중계가 되는 오늘날에는 그 충격파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갈라 치기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없다. 갈라 치기가 끝없이 파생되는 이유는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개돼지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자극제일 뿐이다. 흥분해서 적잖게 삼천포로 빠졌지만, 마광수의 시대에서 지금까지 언론과 미디어 그리고 사람들이 이슈를 받아들이는 패턴에 있어서는 그 어떤 발전 또는 개선은 없어 보인다. 더욱이 정말 흥분해야 하는 커다란 사안에는 무덤덤하고, 사소한 것에만 광분한다. 연예인의 그릇된 행동에 거품 물며 들여다보는 것 10분의 1만 정치권에 몰아도 우리나라 진작 선진국 되고 어마어마하게 잘 사는 나라 됐을 거라 감히 단언해 본다.
마광수란 사람이 보여온 일련의 언어들과 흐름은 필시 가볍게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의 부끄러움은 맞다. 하지만, 그걸 좋다 나쁘다 판정하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이다. 좋다고 느끼면 즐기면 될 일. 별로면 안 보면 될 일. 피카소가 그린 누드화는 걸작이고 마광수가 쓴 야한 소설은 나쁘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하긴. 이젠 인공지능 도움을 받아 개가 웃는 시대가 오긴 했다.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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