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흙이 사라진 세상 ㅣ 조 핸델스만 ㅣ 김숲

흙이 사라진 세상 ㅣ 조 핸델스만 ㅣ 김숲 ㅣ 지오북

by 잭 슈렉

번듯한 놀이터가 있을 리 없던 시절이었다. 서울 한복판이었지만, 학교를 비롯 동네 곳곳에 흙이 조금이라도 있는 공간이면 그곳이 놀이터가 되었다. 말 그대로 흙도 퍼먹었고 흙만 있어도 온갖 놀이가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위생이나 청결 따위의 단어를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머리카락 사이로도 흙이 범람했고, 흙투성이가 된 옷은 으레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서 대충 털어내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실외복과 실내복의 구분도 없던 그때였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흙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느꼈다. 아이들은 흙에서 놀게 해야 하는데 여전히 태어나 쭉 자라온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공간은 생각보다 협소했다. 과거에 비해 공원이 많이 만들어졌으나 아무렇게나 갖고 놀만한 흙이 있는 공원이 아니었다. 잘 가꿔진, 예쁘게 정돈된 마치 진열된 느낌의 놀이터뿐이었다. 되려, 아이들 넘어지면 다칠라 흙바닥 대신 쿠션감이 물씬 느껴지는 재질의 바닥재를 깔았다. 좋은 점도 있겠으나 흙을 만지고 흙에서 뒹구는 경험은 한껏 줄어들었다. 하긴, 일부러 갯벌체험도 하고 숲에서 뛰어노는 프로그램까지 있다고 하니 무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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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촌놈으로 자라오면서 흙의 중요성은 딱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지질학은 영화 <쇼생크 탈출>을 통해 접했고, 석유니 석탄이니 화석이니 하는 것들은 중고등학교 과학 책이 전부였다. 분명 중요한 것은 알지만, 그것을 피부로 체감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손에 쥐었다. 이 책은 '우리 발밑에 있는 지구의 과거, 현재 그리고 위태로운 미래'라는 부제로 생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흙의 중요성과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흙의 노골적인 장면을 도판으로 먼저 소개한다. 사진만 봐도 다가오는 공포감은 제법 묵직하다. 발전이란 이름 아래 인류가 그동안 외면하고 무시해온 결과물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만 같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 봐온 인류의 멸망의 수순을 그대로 밟는 그런 느낌이다. 폐 호흡을 하는 이상, 수면 위 두 발을 내딛고 살아야 할 땅이 있어야 마땅하나 점점 설자리와 먹을 것을 재배할 공간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워터 월드>의 설정이 잠시 잠깐 번뜩였다. 지구는 물로 뒤덮였고,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서는 주인공의 여정은 그땐 웃으며 봤지만 이젠 섬뜩한 불안감을 전해준다. 총 10개의 챕터를 통해 책은 흙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흙이 하는 일, 사라져 가고 있는 흙, 지구상에 존재하는 12종의 흙, 그리고 흙의 미래와 가치 무엇보다 농사짓는 방법을 바꾸는 청사진까지 제시한다.


짐짓 과학의 결로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먹을거리에 대한 친밀한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어려운 용어들이 적지 않지만, 당장은 다가오지 않을 미래라 치부하기엔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큰 이슈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집중을 이어갔다. 마법의 버튼을 눌러 복귀시킬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니기에, 이 사안은 단순히 흙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인류 모두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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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우리는 저출산으로 적잖은 고민을 안고 있으나,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인류의 무분별한 증가폭은 상대적으로 흙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한정적인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먹을거리 역시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를 먹고자 하는 인류의 수는 늘어난다. 결국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하면서 수많은 이들이 빈곤과 기아에 허덕일 따름이다.


지구온난화를 대표로 거론할 수 있을 기후 변화, 늘어나는 인구, 산업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패러다임을 뒤집어엎어 효율의 측면에서 더욱 박차를 가할 대안까지... 책은 다양한 분야의 고민과 이슈를 다룬다.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일이 산더미인 요즘, 설상가상으로 굳이 이렇게 답답하고 갑갑한 소재의 책을 왜 읽어야 할까 싶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과 가치에 대한 탐구를 통해 조금이나마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실천에 대한 고민을 떠올려보는 것도 나름 유의미한 일이 아닐까 싶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 한복판이지만, 소비와 생각 그리고 마음이 지향하는 방향은 자연을 향하게 두고 싶다.


<책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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