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은 공부도 공부지만, 생활 습관에 대해 늘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오죽하면 우리 보고 '먹자싸놀'만 잘 하라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놀라!"라는 뜻인데,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교실에서는 다양한 참견과 간섭 그리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각자 싸온 도시락에 밥풀이 남아 있는지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쌀 한 톨도 허투루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돈 버느라 고생한 아버지, 도시락 싸주신 어머니, 벼농사를 지은 농부에게도 모두 중요한 마음가짐이라 일러주셨다.
그때는 정말 귀찮고 불편했는데 지나고 나니 그래도 그런 소소한 관심과 애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아빠로서 음식 욕심내지 않고, 음식 남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끔은 주의 깊게 챙기기도 한다. 살림도 좋아하고 요리도 좋아하는지라 결혼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아침은 늘 내가 준비한다. 아내보다 잠이 적은 것도 한몫하는 이유다.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하고 정리까지 하다 보면, 먹을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시기란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 불과 수십 년 전임을 믿기 힘들 정도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식문화는 그야말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미디어와 매체에서는 연일 음식에 대한 콘텐츠가 범람의 수준으로 넘쳐난다. 어지간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요샛말로 셰프라 하는 요리사도 있고, 먹방 유튜버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에 이르렀다. 맞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장땡인데, 그중에서도 잘 먹는 게 가장 중요한 시대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풍족한 먹을거리가 시작되었고 유지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고민은 그리 깊게 해보지 않은 것만 같다.
저자의 이름을 보는 순간 '문제작!'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강렬한 이름이 매력적인 그의 책은 대한민국 식량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룬다. 지구에 존재하는 전체 땅 면적 중 사람이 살 수 있는 비중은 약 3분의 2라고 한다. 그리고 그중 반 정도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이다. 직전에 읽은 책과 마찬가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로 인해 농사 면적은 정해져있고, 수확해야 하는 작물의 양은 늘어나야 한다. 바다로 눈을 돌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장기적으로 대안이 될 수 없는 영역이다. 무식하게 대가리 박는 심정으로 아무거나 시도한다고 마냥 이뤄지는 시대가 아니다. 보다 효율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고민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미국, 이탈리아, 일본, 동남아시아 등 제아무리 다양한 해외 국가의 메뉴들이 범람해도 한국 사람에게 밥 심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다른 음식은 질려도 밥은 안 질린다. 밥은 쌀로 만들고 쌀은 벼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에 따른 경작 면적, 국가적 계획과 실천 방안, 그리고 지난 역사를 통틀어 행해온 잘못된 관행과 이를 타파할 수 있는 대안까지도 책은 들려준다. 그것은 비단 벼 품종에 지나지 않는다. 밀, 대두 등 쉽게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음식의 원재료에 대한 고민도 간과해선 아니 될 것이다.
달라지는 기후로 인해 변화하는 작물 재배의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국가별 수입과 수출에 대한 매끄러운 무역도 중요하다. 해방 후 한국 전쟁을 지나 보릿고개와 우루과이 라운드를 지나온 20세기 대한민국의 식량의 가치는 21세기에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 젊은 농사꾼만 유입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기후, 유통, 정책, 지원, 환경, 종자, 농촌, 어촌, 지역 소도시 등 여러 분야에서의 항목들을 체크하고 또 체크해야 한다.
관련하여 뉴질랜드와 일본을 대표로 다른 국가의 사례들을 모범답안으로 참고해야 할 필요도 있다. 우리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지혜롭게 위기를 이겨낸 나름대로의 혜안을 과감히 참고하고 본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고지식한 사고방식으로 과거의 전통과 문화를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저자는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한 쓴소리와 해결의 열쇠를 단호한 어조와 쉬운 용어로 친절하게 들려준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클릭 몇 번이면 원하는 식재료를 집까지 배송받아먹을 수 있는 시대다. 익숙한 식재료는 물론이거니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이국적인 향신료와 식재료 또한 전혀 어렵지 않다. 물건을 사면서 굳이 그 물건의 기원과 유통과정까지 괴팍스럽게 따지고들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한정된 자연 안에서 늘어나는 인구를 감안한다면 우리가 지금 소비하고 있는 음식 문화에 대해서만큼은 한 번 정도 살펴볼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남용에 가까운 무분별한 소비는 그리 머지않아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누리는 여러 즐거움 중에 먹는 즐거움을 앞설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모쪼록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허락된 영역 안에서 굶지 않고 충분히 영양가 높은 풍요로운 식사를 즐길 수 있길 바라본다. 무엇보다 절대 음식을 낭비하는 일 만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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