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스물 즈음 ㅣ 마광수 ㅣ 책읽는 귀족

by 잭 슈렉

어떻게 한번 꼭 보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온갖 방법을 떠올렸으나 마땅한 게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죽도록 보고 싶었던 영화는 다름 아닌 샤론 스톤 주연의 <원초적 본능>이었다. 워낙 유명하기도 했거니와 도대체 왜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엄지손가락을 척! 세우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친구가 우리 집에 있고, 내가 비디오 가게를 간 다음 이미 20살이 넘은 큰형이 빌려 오라고 시켰다고 말하는 거였다.


비디오 가게 아줌마는 나도 큰형도 모두 잘 알고 있었기에 의심은 안 했으나 집에 확인 전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비디오 가게에는 이미 우리 집 정보가 있었고, 아줌마가 전화를 걸자 친구가 큰형처럼 전화를 받았다. 성공했다.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집으로 오는 길, 내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집에서 <원초적 본능>을 봤다. 우와... 역시... 대단했다. 너무 좋아서 친구를 돌려보내고 한 번 더 봤다. 우와... 역시...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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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이 시작하면서 서울의 봄은 한참 이후로 물러나게 되었고, 그 자리를 채우게 된 건 이른바 3S 정책이었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가 바로 그것이다. 시시콜콜하게 따지고들 마음까진 없고, 야한 영화가 1980년대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액션, 드라마, 코미디, 공포, 호러, 역사, 다큐 등 다양한 영화 장르에서 야한 영화도 있는 게 맞다. 야한 영화는 나쁜 게 아니다. 다만, 그걸 악용할 때 그게 나쁜 거다.


야한 소설을 써서 감옥에 간 사람이 있었다. 내가 <원초적 본능>을 비디오로 보기 직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그의 생김과 이름 때문에 당시 내 기억에는 그 사건이 또렷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 말도 아닌 마 씨라니! 거기다 그냥 광수면 평범했을 텐데 성이 마 씨가 붙자 뭔가 대단한 느낌이 들었다. 마광수. 대학교수라 했다. 그가 쓴 야한 소설이 문제가 돼서 그는 감옥에 가게 됐다. 야한 영화를 비디오 가게에서 빌릴 때 그의 소설을 읽고 싶진 않았다. 쓴 사람이 감옥에 갔으니 읽은 사람도 감옥에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내 기억에서 그는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종종 찾는 커뮤니티에 아주 가끔 그가 남긴 글 몇 줄이 현대판 격언인 양 올라오는 걸 최근 몇 년 사이 접했다. 맞다. 그런 사람이 있었지. 그러다 도서관에 그가 쓴 책이 있을까 싶어 검색을 해보니 문제가 된 그 소설과 함께 모두 네 권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른 것이 그가 쓴 에세이. 바로 <스물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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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필, 시집 등 약 70여권의 저서 중 이 책은 후반기에 쓴 책이다. 어쩌면 20대의 태동하는 몸부림이 담겨있진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가 경험한 20대 초반 시절의 에로틱한 일상이 수필의 형식을 빌려 쓰여 있었다. 당혹스럽진 않았지만, 저자의 생각 혹은 가치관에 대해 조금이나마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그가 쓴 문제의 소설은 읽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다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가 마녀사냥을 당한 것은 아닌지 그 부분만큼은 궁금하다. 그래서 함께 빌린 책이 그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평론집이다. 이번 독서일기 이후 이어서 언급할 예정이다.


이 세상에 섹스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품격을 지킬 필요까지 있겠냐마는, 그렇다고 똥개처럼 즐기는 건 고개를 돌리고 싶다마는, 섹스라는 콘텐츠 자체가 이토록 음지에서 잉태될 수밖에 없는 시대의 공기가 솔직히 안타깝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저자의 몇몇 생각은 나와 몹시 닮아 있었다. 그를 추종하거나 가치관을 동일시 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언급한 여러 가지 것들 중 충분히 우리가 고민하고 되짚어 볼 만한 것들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정도로 매듭을 짓고 싶다.


<책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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