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해서 사는 곳이 달라지거나, 이직을 해서 일하는 곳이 달라지면 어김없이 그 주변을 작정하고 둘러본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에 걸쳐 주변을 탐방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동네에 다른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정찰을 해야만 왠지 모르게 안심이 들기 때문이다.
결혼 후 전세로 살면서 이사를 그리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되면서 집 근처 약국이나 병원은 꼼꼼하게 살핀다. 어제까지 있었던 매장이 사라진 경우도 있고, 없던 매장이 새로 생겨나기도 한다. 실시간으로 늘 레이더를 돌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최선의 발품만큼은 팔게 된다.
'시간을 건너 낯선 눈으로 서울을 보다'라는 부제의 책은 건축 여행을 즐기는 저자가 11개의 주제로 모두 54곳의 건축물을 소개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을 지낸 내게 있어 출퇴근길에 매일 보는 건축물도 있었고, 아직 그 존재 자체도 모를 건축물도 있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느껴지는 반가움과 낯선 공간을 마주할 때의 두근거림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교차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편한 낱말들로 너무 어렵지 않게 말 그대로 다정다감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여 그곳으로 향하게끔 나를 이끌기 충분했다. 아끼지 않고 수록된 사진에서 충분히 건축물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세련되고 새것의 화려함이 아닌, 오래되고 낡고 닳은 세월을 깊게 머금은 수묵화처럼 그것들이 펼쳐졌다. 책이라는 도구가 전하는 여러 주제에 있어, 이토록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책에 담긴 모든 곳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곳은 꼭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저자도 지면을 통해 잠시 언급했지만, 서울은 그야말로 초고속 성장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머금고 있는 도시다. 개인적으로는 낡고 오래된 것들을 보수 보완하며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보지만, 실상 경제논리는 싹 다 밀고 새로 짓는 걸 더 우선시한다. 비효율이란 단어가 높은 주거 비용을 지불하면서 자산증식의 도구에만 이토록 날카롭게 적응되는 쓴맛 이상의 불편함이 느껴지는 도시다. 그렇다고 아주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어찌 보면 서울은 규모 면에서 만만한 수준인데, 그 안에 너무 많은 것을 꾸역꾸역 밀어 넣은 기분이다.
한국전쟁 이후 70년 정도 못살게 괴롭혔으니, 이제는 새것은 그만 만들고 있는 것만 잘 관리하면서 도시 자체를 숙성시키는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서울에 집중된 많은 것들을 지방으로 분리한다 한들 서울이 가진 얼개가 그전보다 더 헐거워질까. 손바닥 뒤집듯 하루아침에 완성될 일이 분명 아님에도, 여러 종류의 방법들로 서울을 괴롭히지 않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서울이란 곳이 이미 충분히 숙성되어 왔고 또 지켜야 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음을 증명한다. 사라지고 잊히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추억하고 복기해가며, 조금이나마 있는 그대로 지켜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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