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 우리 모두의 다른 이름

바나나

by 잭 슈렉

청렴은 무엇일까


가훈, 급훈으로 정직이란 말은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된다. 사회적 동물로서, 문명을 이룩하고 그 속에서 정해진 규칙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시대에선 중요시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청렴은 정직보다 높은 수준의 난도를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 조금 더 맑고 명확한 기준을 요구한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는 입에 오르내릴 일이 거의 없는 청렴이란 과연 무엇일까? 열 살과 일곱 살 두 아들을 기르는 아빠지만, 정직은 말할지언정 청렴이란 단어를 아이들에게 말하진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친구나 지인 사이에서도 입 밖으로 뱉는 일은 전혀 없을 정도다. 뉴스에서나 등장할 이 낱말은 과연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누구나 떠올리기에 지극히 뻔하고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청렴이란 말의 영향력은 꽤 협소해 보였다. 하지만, 머리와 마음속에서 곱씹고 떠올릴수록 그 범위는 생각보다 매우 넓고 또 광범위하게 느껴졌다. ‘청렴’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청렴의 시대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던 등굣길. 대문을 나와 좁다란 골목을 두 번을 꺾어 내려갔다. 그때였다. 세 번째 모퉁이 바닥에 떨어진 파란색 종이. 가까이 다가가니 종이가 아니었다. 분명했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이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선 돈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학교로 향했다. 3분이 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앞 떡볶이 한 접시가 100원이었던 그때. 만원이면 무려 백일동안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어디 떡볶이만 사 먹을까. 오락실도 실컷 가고 아이스크림도 원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큰돈. 설날에 받는 세뱃돈이나 부모님께서 가끔 주셨던 용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공짜라는 뜻밖의 행운이 내 마음속에서 춤을 추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춤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학교 정문 앞 파출소 문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쭈뼛쭈뼛한 몸짓으로 파출소에 들어갔다. 무슨 일로 왔냐며 친절하게 맞아주셨던 경찰 아저씨. 주머니에 꼬깃꼬깃 구겨 넣었던 지폐. 집 앞 골목길에서 주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몇 학년 몇 반인지 이름까지 물었던 경찰 아저씨의 질문에 아주 잠깐 겁이 났다. 잘못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혼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교실까지 향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3교시가 막 시작됐을 때. 교실 문이 열렸고 교감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내 이름을 부르셨고, 그 사이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났다. 뒤이어 아침에 만난 경찰 아저씨까지 교실로 들어왔다. 다시 겁이 들었다. 엉거주춤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잠깐 깃든 불안감은 이내 사라졌다. 등굣길에 주운 돈을 정직하게 파출소에 신고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친구들이 모두 박수를 쳐줬다. 주인이 나타날 정도로 큰돈은 아니라고 했다. 학용품 사는데 보태라며 그 돈은 내게 선물이 되어 돌아왔다. 머뭇거림 없이 통장에 저축했다. 며칠이 지났고 ‘착한 어린이 상’이라는 이름으로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상장도 받았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가물거렸던 기억이었다. 흩어진 조각들을 맞춰가며 당시의 장면을 떠올리자 그때 느꼈던 벅찬 기분과 즐거움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치 학교 대표로 정직의 캐릭터가 된 것만 같은 당시의 공기. 한 달 정도는 어깨에 꽤나 힘이 들어갔던 시절이었다.


청렴의 디딤돌


공직자들과 몇몇 연예인에게만 청렴의 잣대가 필요한 것일까. 그 어느 때보다 청렴은 이제 개인의 삶 그리고 사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박제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 조작과 은폐, 소수의 목소리와 여론의 참여 비중이 현저히 높기에 더더욱 그렇다. 사소할 수 있지만 솔직하고 부끄럼 없는 행동.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시에 이타적인 생각도 조금은 할 수 있을 마음의 여유. 공생만을 위해 한 사람의 희생을 닦달하는 것은 또한 아니다. 공감과 교감을 위해 균형 잡힌 양보와 배려를 수시로 조율할 수 있는 화합의 채널이 열린 시점.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 폰을 통해 그 경계는 더 선명하고 또렷해졌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시대. CCTV를 비롯하여 자동차의 블랙박스, 휴대폰 카메라 등의 채널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난다. 역설적으로 감시의 시선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도구로도 활용된다.


같은 칼도 의사와 강도의 손에 쥐어질 때 그 쓰임새가 다르듯, 폰에 달린 손톱보다도 작은 카메라는 감시의 채널임과 동시에 스스로를 SNS 등에 드러내는 소통의 채널로도 사용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는 개인적인 영역에서 확장을 멈추지 않는다.


비 오는 날 폐지를 가득 담은 수레를 끄는 할머니에게 우산을 씌어주는 여중생. 느린 걸음의 어르신을 보고 오토바이에서 내려 부축하며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준 배달의 청년. 달리는 트럭에서 쏟아진 과일들을 재빨리 주워 교통체증 없는 도로를 만들어주는 시민들. 가난한 어린 형제에게 오랫동안 무상으로 치킨을 제공한 음식점 주인까지... 우리의 일상은 시시때때로 공개된다. 개개인의 크고 작은 청렴은 많은 이들에게 전파된다. 그리고 전염된다. 아름다운 사회라고, 보이지 않는 낙관이라도 찍는 것만 같다.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모든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핼러윈 데이에 독립투사 변장을 하고 마치 그것을 자랑삼는 SNS 게시물. 가혹한 성적 착취와 폭행을 일삼고 이를 전파하는 사람들. 왕따의 가해자 혹은 방관자.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칼이 때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명제를 시시 때때로 잊는 현실의 단면이다.


큰 각오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기회를 기다릴 이유도 없다. 다만, 그들의 선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치킨 집 사장은 선행이 세상에 알려지고 많은 이들로부터 돈쭐을 당하기도 했다. 개인의 선한 영향력은 사회적으로 더 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에 비해 개방적인 채널을 매개 삼아 드러난 것들을 그 예로 든 것일 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자면 청렴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뿌릴 밀알과도 같은 것이다.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다. 안전 수칙을 지킨다. 결과에 승복하고 다음을 준비할 줄 아는 여유로움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생각과 신념을 품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고리타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을 뒷받침해 주고 헛되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는 사회적 장치도 중요하다. 청렴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여러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럽고 혼탁해진 물을 깨끗하고 맑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청렴 고백


무척 좋아하던 수필가는 서른여섯 살부터 중년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미 난 중년이다. 파출소 문을 열 때의 두근거림은 추억 너머로 사라졌다. 친구들의 박수 속에서 내가 주운 돈을 다시 받을 때의 기분도 뿌옇기만 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서랍장에서 500원을 훔친 뒤의 불안함은 36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좋은 것은 사라지고 나쁜 것은 오래 남는 일. ‘때린 놈은 다릴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릴 뻗고 잔다.’는 속담이 다시금 떠오른다.


불편한 뉴스를 마주할 때면 으레 ‘희귀한 일이니까 보도되는 거야’라고 합리화를 시키곤 한다. 외눈박이 세상에선 두눈박이가 손가락질받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뉴스의 주인공이 된다면 더는 새롭지 않은 일이 된다. 고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야기가 뉴스가 되는 것은 한편으로 반가운 일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아름답다는 반증일 테니, 그렇게 단단히 믿고 싶다. 두눈박이 세상에서 외눈박이로 평생을 살고 있다. 단 한 번 그 누구도 내게 손가락질 한 적 없다. 나 또한 내가 초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청렴은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진작부터 청렴한 사람.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청렴한 사회다. 때문에 청렴하지 못한 사람이 입방아에 오르고, 그런 일들이 과거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빨래하기 전 먼지를 미리 털어내면 세탁 효과가 좋아지는 것과 같이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자 애를 쓴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정독한다. 도서관에 가는 발걸음은 늘 즐겁고 설렌다. 한 달 8만 원 용돈에서 2만 원은 어린이 재단 등에 후원을 한다. 유별나게 행동할 건 단 하나도 없다. 조금 더 노력하고 조금 덜 욕심을 내면 될 일이다. 내가 꿈꾸는 신념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유지하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미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나, 그리고 사람들 모두. 청렴은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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