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필 : 실패 없는 기우제

by 잭 슈렉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게 되면 결국 성공에 이르게 된다. 경우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으나,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를 빗대어서는 이만한 표현도 없다고 본다.


모처럼 주말을 맞아 TV를 켰다. 케이블 영화 채널로 직행했고, 때마침 <쇼생크 탈출>의 오프닝 타이틀을 마주할 수 있었다. 중간부터 보기 시작해도 끝까지 보는 영화를, 이번엔 시작부터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족히 백 번은 봤을 영화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즐겁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앤디(팀 로빈스)는 도서관을 조금 더 알뜰하게 운영해 보고자 주의회에 6년간 매주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하여 도서관 발전 기금 2백 달러와 헌 책, 그리고 LP를 받게 된다. 벅차오르는 감동 때문이었을까. 그는 교도소 전체에 어느 노래인지 굳이 알 필요 없는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한다. 되려 그 음악이 누구의 어떤 곡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레드(모건 프리먼)의 말처럼 그 순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했을지 모른다.


jarmoluk-old-books-436498_1920.jpg


음악을 들려준 대가로 앤디는 독방에 갇히게 된다. 모차르트와 함께 있었다며 흡족해하는 그는 앞으로 매주 두 통씩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나아가 매년 500달러씩 발전기금을 꾸준히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이를 제대로 이해한 건지 잘못 이해한 건지 굳이 판단하지 않더라도, 감성 충만한 10대 시절 앤디의 행동은 분명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리하여 영화를 관람한 이듬해 연예인과 1주일간 생활하며 팬심을 정성껏 전하는 KBS 2TV의 예능 <TV 데이트>에 엽서를 보내게 된다. 대상은 해철이 형, 신해철이었다.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에 매주 보냈다. 당시만 해도 제법 인기가 있는 인물이라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던가. 낭랑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해당 프로그램 작가였고, 신해철 편을 준비 중인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 공개 오디션을 통해 지원자를 선발할 거라고 했다.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많은 장기를 준비해오라며 전화가 끊겼는데, 겁이 났다. 오디션 자리에 간다 한들 내가 뽑힐 리 만무한 일이었다. 결국 한참 지나 피아노를 전공하는 내 또래 어느 여자애가 해철이 형과 일주일을 보내는 것을 TV를 통해 지켜봤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물러선 묘한 패배감이 씁쓸했다.


그 뒤 몇 년이 흘렀다. 당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는 <일요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일요일 1시간 동안 애청자가 스튜디오에 와서 직접 선곡도 하고 배철수랑 대화도 나누는 코너가 있었다. 활동 중이던 음악 동호회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엽서를 보냈다. 매주 한 통씩 대략 4~5개월 보내니 전화가 왔다. 담당 PD라고 자기를 소개함과 동시에 아주 약간 신경질적인 톤으로 이제 그만 엽서를 보내라고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2주 뒤 일요일 방송을 위해 MBC로 향했다. 동호회 시솝 형과 함께 방문, 모두 6곡을 방송을 통해 들려주었고, 문화상품권도 출연료로 받아 모임 회원들과 골고루 나눠 사용했다. 배철수 사인도 정성껏 받았는데, 다이어리를 분실해서 지금은 없다.


jplenio-grass-7089807_1920.jpg


쓴맛 한 번, 달콤한 맛 한 번 모두 두 번의 맛을 본 뒤 기우제 지내는 마음으로 계속 두드리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이후 나름의 기우제는 대부분 실패로 끝을 맺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며. 문제는 횟수가 아니었는데, 무식하게 기우제만 지냈나 싶기도 하다.


언젠가 일하던 직장, 대표가 실력이 좋다며 외부에서 실장 직책으로 누군가를 데려왔다. 일을 잘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알고 보니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천하의 나쁜 놈이었다. 더욱이 CS 부서 여직원들이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내게 도움을 요청해오기까지 했다. 내가 잘리든 실장을 내쫓든 단판을 지어야만 했고, 그때부터 눈에 핏대 세우며 대표와 조직을 설득해서 한 달여 만에 목표한 바를 이뤘다. 실력이고 나발이고 쓰레기랑 같이 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아 또 뭐가 있지... 잠시 잠깐 생각해 보는데 마땅히 기우제를 지낼 정도로 몰입하고 추진력 있게 행동한 사례가 거의 없다. 조만간, 제대로 된 기우제 한 번 지낼 생각으로 뭐가 됐든 어떤 것이 됐든 몰입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 그걸 만드는 것도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다스려야만 한다.

작가의 이전글[독서일기] 영화의 언어 ㅣ 이다혜 ㅣ 시간의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