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필 : 음악은 영화다

by 잭 슈렉

누구에게나 예술을 즐기는 데에 있어 자기만의 습관 또는 고집이나 취향이 있기 마련이다. 좀비나 뱀파이어는 대환영인데 소복 입은 동양 귀신은 질색한다. 피가 낭자하는 슬래셔 무비도 환장을 하는데 현실에선 칼에 손이 베어 피만 흘러도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음악은 가능하면 볼륨을 크게 해서 듣는다. 청력에 안 좋다고 맨날 얘기하는데 '됐고!', 난 크게 듣는 게 좋다. 그리고 시작한 곡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듣는다. 다른 할 일이 있어서 혹은 어떤 필요에 의해서 곡 도중에 정지 버튼 누르는 건 노래를 만든 창작자에게 몹시 미안한 일이라 어지간하면 절대 안 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클래식 듣기가 무섭다. 이건 뭐 시작하면 최소 몇십 분은 예의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어쩔 수 없을 땐 볼륨 버튼을 서서히 작게 해서 마무리 짓는다. 그래야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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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으로 가능하면 앨범 단위로 노래를 듣는다. 어느 가수 2집에 3번 트랙이 유명하다고 그것만 플레이어에 놓고 반복 재생 눌러 여러 번 듣지 않는다. 물론, 가끔은 그럴 때도 있다. 가사를 외워야 한다거나 그 노래를 낱낱이 분석하고 파헤치고 싶을 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카세트테이프든 CD든 LP든 첫 트랙부터 끝까지 쭉 듣는다. 오늘 듣다가 8번 트랙에서 끝나면 다음날 숙제하는 마음으로 9번 트랙부터 이어나간다.


인기를 위해 소속사가 마구잡이로 기획해서 한두 트랙만 번듯하게 만들고 나머지는 트랙 리스트 채우는데 급급한 앨범도 있겠다. 하지만, 음반 또한 영화처럼 그 안에 기승전결이 있다고 믿는다. 특정 주제로 곡들이 이어지고, 트랙 구성에 따라 장르 분위기 메시지 연결되는 흐름 등이 나름의 맥락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음악은 한 편의 영화 같다. 이야기다. 조금 더 확장해서 한 아티스트의 전집을 1집부터 듣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데뷔 초기 혈기 왕성한 여러 시도가 세월이 흐르면서 원숙함에 이르는 과정을 음악을 통해 느껴질 때를 즐긴다. 비록 나보다 앞선 세대의 음악이거나 이미 요절한 아티스트라 하더라도 그가 예술을 통해 살아온 역사를 음악으로 되짚어 볼 수 있음이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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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 CD, LP 등의 매체로 음악을 듣는 이가 과거에 비해 훨씬 줄어든 시대다. 대부분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좋아하는 곡을 고른다. 물론, 앨범 단위로 듣는 이도 있겠지만 그 비중 또한 현저히 줄어든 것만 같다. 더욱이 특정 상황에 듣고 싶은 곡을 스트리밍 사이트가 알아서 제안해 주는 시대에 이르렀다.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꼽는 게 아닌, 분위기에 따라 그야말로 BGM처럼 흐르는 음악이라니!


내 취향을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에 맡기고 싶지는 않다. 좋고 나쁨의 영역은 아니 이게 그저 나와는 맞지 않는 이러한 시류가 탐탁지만 은 않다. 듣고 즐거우면 됐지. 거기까지다. 난 나대로 즐기련다. 음악은, 영화다. 눈 감고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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