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필 : 서점 투어

by 잭 슈렉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사는 생각을 가끔 했다. 돈이 많아 책을 그리 산다 한들 보관할 만한 마땅한 공간도 없을 만큼 작은방이었다. 그래서 책을 사지는 않고, 틈틈이 가서 읽었다. 아니, 정확히는 신나게 구경만 했다.


서울 사는 특권이었다. 버스로 20여 분 남짓 달리면 광화문에 이르렀다. 시작은 늘 교보문고였다. 지하 1층 그 커다란 공간에 들어서면 서점이 마치 내 것만 같았다. 천장에는 거울이 바둑판처럼 펼쳐졌고, 바닥 카펫은 부드러웠다. 가장 좋아하는 잡지 코너를 시작으로 온갖 책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음반을 파는 매장도 꼭 들렀고, 학용품 취급 코너 역시 코스 요리처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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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갈색으로 꾸며졌기에 교보문고에 들어서면 종이를 만드는 원료인 나무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묘하게 포근했고 따뜻했다. 사람들이 그리 많았는데 소란스럽거나 시끄럽지도 않았다. 어디서나 책을 꺼내 아무렇게나 읽어도 됐다. 누구 하나 핀잔주는 이 없었다. 훗날 그것이 초대 회장의 방침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날 이후 온라인으로 책을 살 땐 반드시 교보문고만 이용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다.


교보문고 이후로는 영풍문고로 향한다. 이미 볼 책들은 다 구경한 뒤라 지하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영풍문고에선 앞서 교보문고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눈요기하는 마음으로 훑는다. 카펫 대신 딱딱한 대리석이 세련되어 보이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 색으로 따지자면 하얀색이었다.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군인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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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종로 서적으로 마무리를 했다.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층마다 특색 있는 미로 같은 공간이 너무 좋았다. 앞선 두 서점 보다 한껏 헝클어지고 혼잡스러운 분위기지만 그 안에서 묘한 질서가 느껴졌다. 딱 꼬집어 어떤 색이 떠오르진 않지만, 오래된 책부터 찾기 힘든 책까지 모조리 다 종로 서적에 있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그 책들을 찾느라 고생하진 않았다.


용돈이 있어 책을 한 권 사거나 볼펜을 한 자루만 사도 기분이 좋았다. 오가는 길에 버스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걸어서도 충분한 거리였다. 헤아려보니 내가 사는 집에서 교보문고까지 딱 4km 거리였고, 걸어가는 길에 마주하는 신호등은 모두 11개였다. 수시로 달라지는 도심의 풍경도 즐기고 서점 가는 길, 서점에서 실컷 놀다가 집으로 오는 길, 모두가 좋았다.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사는 꿈을 실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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