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 증류주의 모든 것 ㅣ 조엘 해리슨, 닐 리들리 ㅣ 한스미디어
술에 관련된 책을 보면 반드시 읽고자 한다. 좋아하는 걸 자세히 안다는 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술이 좋아서 술장사도 두번이나 해봤고, 언젠가 집에 술 전용 냉장고도 갖추리라 다짐한다. 전면이 투명 유리로 되어 있는 쇼윈도우 냉장고... 그 안에 빼곡하게 온갖 종류의 술을 넣고 단 한병도 꺼내마시지 않은 채 눈으로 마시는 즐거움을 누리긴 개뿔. 야금야금 마시면서 마시는 족족 채워넣고 싶다.
이번에 읽은 책은 판형도 특이하고 커버 디자인부터 속지 편집까지 나를 무척 설레게 했다. '스피릿'이란 단어가 내가 아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여서 다소 당황했고, 알듯 모를듯 여러 종류의 주종이 언급되어 읽는 내내 달콤했다.
진, 보드카, 데킬라, 압생트, 럼, 위스키, 프랑스의 브랜디, 세계의 브랜디 등 다양한 종류의 술 이야기가 정리된 구성에 맞춰 등장한다. 아쉽다면 쉽게 구할 수도 없거니와 또 생각보다 고가의 제품들이라 책으로만 마실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술에 대한 상식과 관심이 용솟음 친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임은 틀림없다.
허나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에 등장한다. '그 외의 스피릿'이란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우리의 영혼 푸드 '소주'가 바로 그것이다. 해외 작가가 쓴 어느 책에 우리나라 이야기가 등장할때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알수가 없다. 그게 설령 애국심이라 할지라도 거기서 국뽕을 맞을 필욘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선 우리의 소주를 정말이지 기묘하고 또한 너무 정확하게 표현해서 다소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세계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스피릿, 소주'라는 타이틀로 꼴랑 한장 반 페이지에 할애된 영역에서 우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을 매일(!)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국뽕을 맞아도 되겠다 싶었다. 또한 '한국에서는 맥주와 함께 섞어 마시는 방식 또한 인기이다'라고 맺는 부분도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게 소주가 맛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맥주가 (더럽게) 맛이 없어서 그러는건데... 임마들 자료조사가 부족했다. '판매 면에서 보면 으르렁거리는 호랑이일지 모르지만, 입안에 머금을 때는 가르릉거리는 새끼 고양이 같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다른 술들에 비해 몹시 낮은 도수는 소주의 장점이다 단점이 되는지도 모른다.
중국 술, 일본 술, 인도 술도 나오는 마당에 그나마 우리 술도 언급되서 아주 잠깐 달콤한 기분에 휩싸였고, 지난밤 마신 소주의 풍미가 아직 입안에 남아 있을 터는 없으니 이른 아침 비오는 토요일을 맞아 모처럼 아침술 한잔을 마셔볼까 한다.
천체물리학 책을 읽고 우주로 나갈 순 없는 노릇이다. 로맨스 소설을 읽고 연애를 시작할수도 없는 얼굴이다. 허나 제과제빵 책을 읽고 머핀도 만들고 쿠키도 만들었듯이, 술 책을 읽고 아침술 한잔 마시는 건 올바른 독서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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