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500원이 어디냐고 조조영화를 고집했던 시절이 있었다. 입간판 아래 꼬불꼬불 전단지를 손에 쥐고 길게 늘어진 매표 줄을 지루함 없이 기다렸다. 어디에도 극장이 있던 요즘과는 달리 그때만 해도 '영화 구경'이 그야말로 큰 즐거움이자 외출이었다. '구경하다'란 말의 어원도 영화를 보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을 떠올려보면 무리도 아니다. 극장 안과 밖 모두가 북적거렸다. 눈앞에서 매진되어 다음 회차를 끊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암표상이 득실거렸다. 영화 한편 보고 나면 며칠간은 친구들 사이에서 할 말이 단연 많아졌던 시절이 있었다.
또 하나의 극장이 우리 곁을 떠난다. 지금에 비해 상영관 수가 급격히 적었던 그 시절. 충무로와 종로를 잇던 영화산업의 메카를 끝까지 지탱해왔던 대한극장이 오는 9월 30일을 끝으로 폐관한다. 전국에서 가장 큰 스크린을 보유한 극장. 이름도 대한극장. 천천히 걸어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극장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것조차도 내겐 커다란 자긍심이었다.
대한극장에 앞서 최초의 멀티플렉스 구조였던 서울극장이 몇 년 전 사라졌다. 단성사는 대한극장처럼 단관 상영관에서 복합 멀티 상영관으로 다시 태어났으나 지속적인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진작에 문을 닫았다. 국도, 스카라, 아시아, 명보, 서대문, 코아아트홀, 시네코아, 피카디리, 허리우드, 씨네큐브 등 종로와 충무로 주변의 모든 극장들이 사라졌거나 과거의 모습과는 다른 풍경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한극장을 그 누구보다 자주 찾는 팬으로서 폐관 소식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매주 월요일 휴관에 1회 상영을 오후에 시작하는 점. 그리고 11개 상영관 중 일부 상영관만 운영하는 등 누가 봐도 정상적인 운영이 이뤄지지 못한지 오래되었다. 급격히 줄어든 관객 수. 그리고 더 이상 영화산업의 지형 변화가 비단 충무로에 지나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도 한몫한다.
대한극장은 내게 여러 가지 이유로 큰 의미를 가진 극장이다. 태어나서 처음 찾은 극장이 바로 대한극장이었고, 사는 곳과 멀지 않은 이유로 정말 많이 찾았다. 아내와 연애할 때도 그리고 이제는 두 아이와 함께 온 가족 극장 나들이도 늘 대한극장이었다. 하물며 제작과 배급이 분리되지 않는 기형적인 국내 영화 시장에서 혐오스러울 만큼 싫은 멀티플렉스 극장에 신물을 느껴 오직 대한극장만을 찾을 정도로 쓸데없는 고집을 유지해왔다.
극장을 찾을 때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점점 짙어졌다. 가끔 그 소식이 궁금해 관련 뉴스를 찾아보면 운영 주체도 이관되었고 반가운 소식은커녕 안타까운 소식조차 뉴스에 거론되지도 않았다. 일개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영화를 자주 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억울하다면 지난겨울 '대한극장 살리기 프로젝트'라 이름 짓고는 A4 용지 두 장 분량의 나름의 계획을 열댓 가지 적어본 끼적거림을 미처 건네지 못한 것이다. 건넸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 내용은 업데이트를 꾸준히 이뤄 훗날 유사 분야에 꼭 접목시켜보겠다고 다짐만 한다.
그동안 즐거웠어 대한극장.
좋은 영화를 볼 때마다 너를 떠올리겠어.
인생은 영화처럼... 내 인생의 필름은 언제나 대한극장에서 상영하리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