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남들 Men of the Bench
안녕하세요! 벤치남들입니다.
축구학개론 두 번째 시간은 수비수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사실 수비수라는 단어 자체가 수비를 하는 선수면 누구든지 수비수라 불릴 수 있기 때문에 “공격수도 수비수가 될 수 있는 것 아니야?”라고 말하면 맞다고 해야겠지만 ^^;.... 우리는 포지션적으로, 그중에서도 페널티 박스 중앙에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센터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흔히 센터백을 떠올려 보면, 큰 키에 좋은 헤더를 가진, 건장한 체격에 몸싸움이 능한 그런 선수들을 떠올리실 텐데요. 지난 시간에서도 말했듯, 다양한 전술적/환경적 변화속에서 그것들은 전통적으로 센터백이 가져야 했던 능력이기 때문에, 아마 여러분들도 쉽게 그러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을 겁니다.
센터백의 주요한 임무는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입니다. 상대의 공격을 막는다는 것은 정말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공을 가진 선수를 방어해야 할 수도 있고, 공을 막아야할 수도 있고, 공은 없지만 수비의 빈틈을 파고드는 선수를 저지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센터백은 뛰어난 판단력과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팀 수비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중책을 맡습니다. 대학 미식축구의 전설적인 감독 폴 브라이언트가 “공격은 티켓을 팔고, 수비는 우승을 부른다”라고 말했었듯, -물론, 전적으로 팀의 성향을 수비적으로 치중하라는 것이 아닌 공수 양면의 조화를 일컫는 말입니다- 수비에서의 무게감은 한 시즌, 한 시대를 풍미하는 팀의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PL 최소실점 우승팀 04/05 무리뉴의 첼시 1기가 있겠네요.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선수비 후역습의 팀 기조를 갖춰 PL 역사에 전무후무할 ‘15 실점 우승’을 따냈었죠.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축구에서 중앙 미드필더들과 더불어 가장 영리하고 똑똑해야 하는 포지션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수비 상황 시 공격수들의 주발을 파악해 돌파에 능한지, 슛에 능한지에 따라 수비를 다르게 가져가야 하며, 수비상황이 아니더라도 수비라인 컨트롤을 통해 오프사이드 라인을 형성하거나, 빌드업 능력을 활용해 공격 전환을 하는 것과 같은 팀의 전반적인 운영에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 보통 센터백이 실수를 저지르거나 상대의 공격을 허용해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만들 때, 혹자는 ‘센터백은 역시 몸만 좋은 멍청이’이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좋은 수비란 지덕체(?)가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나옵니다. 현재, 대표적으로 수비의 정점에 섰다고 말할 수 있는 버질 반 다이크(리버풀)나 세르히오 라모스(레알 마드리드)가 수비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극심한 기복과 호러쇼를 선사했던 데얀 로브렌(리버풀 시절)과 슈코드란 무스타피(아스날)는 적극적인 수비는 인상적이지만 좋지 못한 판단력으로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기도 합니다.
센터백은 과거 공격에 무게를 두던 근대에서도 최소 2명이 짝을 이뤄 구성됐기 때문에 맡은 역할에 따라, 스타일에 따라 크게 2가지 유형으로 구분이 되기도 합니다. 커맨더(commander) 유형과 파이터(fighter) 유형이 바로 그것인데요. 그 중 커맨더 유형은 단어 그대로 수비수들을 진두지휘하며 수비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 지능과 리더십이 뛰어난 센터백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좀 더 자세히 이 유형의 역할을 알아보자면, 이들은 파이터 유형들의 뒷공간을 커버하거나, 수비에서의 빌드업을 도맡습니다. 또한, 다른 센터백들과 함께 수비라인을 조율하며 수비의 기반을 다지기도 합니다. 수비진에서의 컨트롤 타워 정도로 생각하면 쉬울 듯합니다.
커맨더 유형의 이러한 특징들은 대부분 경험에 기반합니다. 왜냐면 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서 다향한 수비 상황을 치르게 되고, 이를 통해서 수비에 대한 판단력이 더욱 성장되는 것이죠(뭐 성장하지 못하는 선수도 허다합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유망주 시절부터 이러한 수비 지능 혹은 센스에 통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리그 정상급 커맨더들이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적달까요?
여하튼, 이렇게 중요한 역할인 커맨더가 팀에 부재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원래 수비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없었던 팀은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고, 하위권을 전전하다 강등이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해볼 수 있겠죠. 강팀이라고 다를 것 없습니다. 팀 수비의 중심이 되는 커맨더의 부재는 팀 자체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하는데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일어난 미네이랑의 비극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수비를 진두지휘하던 센터백 티아구 실바가 나오지 못해 다비드 루이스와 단테가 센터백 조합으로 나왔고, 결과는 아시다시피.... 또 다른 예로, 15/16~16/17 시즌까지는 리그 상위권 정도의 수비를 보여줬던 아스날이 그들의 코시엘니-메르테사커 센터백 라인이 부상과 노쇠화로 빠진 후 휘청이는 수비와 함께 유로파권으로 떨어진 것, 리버풀이 반 다이크를 영입하고 수비의 기반이 탄탄해져 우승 경쟁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것 등이 있을 수 있겠네요.
이러한 커맨더 중에서도 특히 같은 팀 센터백보다도 조금 더 후방에서 수비라인을 조율하고 최종 수비수 역할을 맡는 것을 '스위퍼(sweeper)' 혹은 '리베로(libero)'라고 하는데요. 스위퍼와 리베로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닌 스위퍼를 이탈리아에서 부르는 말이 리베로입니다. (스위퍼를 기용할 경우, 스위퍼가 다른 수비수보다 자유롭다는 뜻에서 이탈리아어로 자유를 의미하는 리베로가 쓰입니다)
스위퍼/리베로 시스템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 선수 한 명을 수비 라인 뒤에 배치하려 한 것은 1930년대 스위스 축구팀 세르베트의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카를 라판에 의해서인데요. 그는 수비를 안정화하기 위해 공격수 중 한 명을 빼내어 세 명의 중앙 수비수 뒤에 배치하는 혁신적인 전술을 고안해냈습니다. 수비라인 뒤에 배치된 선수는 직접 방어해야 하는 상대가 없었고, 대신에 지역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라판 감독의 아이디어는 1930년대 세르베트에게 일곱 번의 스위스 리그 우승을 안겼습니다. 그 외에도, 살레르니타나의 지포 비아니 감독도 비슷한 전술을 고안해냈는데요. 그는 살레르노 부두에서 어부가 물고기를 낚아 올릴 때, 물고기가 첫그물을 피해도 첫그물의 뒤에 있는 예비 그물에 걸리도록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팀에 예비 그물이 될 수 있는, 즉 수비 라인을 빠져나온 공격수를 낚아챌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비수 스위퍼(편의 상 후술할 내용부터 리베로는 적지 않겠습니다)를 배치시켰었습니다.
스위퍼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전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은 바로 1960년대 AC밀란의 네레오 로코와 지역 라이벌 인테르의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에 의해서입니다. 그들은 각각 체사레 말디니와 아르만도 피키를 스위퍼로 두는 카테나치오 전술을 사용했고, 그들의 지도 아래 양 밀란은 유럽 대항전과 리그를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스위퍼를 기반으로 한 카테나치오는 지나치게 수비적이고 우아하지 못한 신중한 플레이 스타일로 인식되기도 했는데요. 로코가 선수들에게 했던 말은 –“움직이는 모든 것을 걷어차라. 그게 공이라면? 더 좋다”- 카테나치오의 방향성을 더욱 극명하게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표현들이 카테나치오 개념의 기반을 왜곡시켜서는 안됩니다. 수비의 안정을 도모하고 기반을 다지려 했던 카테나치오에 대해서는 추후 전술 파트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전까지의 스위퍼는 수비에만 치중하는 느낌이 강했지만, 1960년대 후반 잉글랜드의 바비 무어를 시작으로 좀더 공격적인 역할의 스위퍼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바비 무어는 이전의 스위퍼들과는 다르게 처진 위치가 아닌 동료 센터백들과 동일한 선상에 위치해 납작한 수비진을 구성했는데요. 이는 기존의 스위퍼 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공격 가담을 시도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를 한층 더 발전시키며 스위퍼의 공격 기여도를 수비수라고 볼 수 없는 수준까지 끌어올린 선수가 바로 ‘황제’ 프란츠 베켄바우어인데요. 베켄바우어와 같은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당시에는 전무했기에 그와 같은 유형의 스위퍼를 구분하려고 ‘독일식 리베로’라는 말을 새롭게 만들어낼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그 위상이 대단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이후에도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로날드 쿠만, 로랑 블랑, 마티아스 잠머 등이 스위퍼로 이름을 날렸었습니다.
사키이즘의 영향을 받은 현대에 와서는 4백이 전술의 대세가 되고, 2선에서 no.10 역할을 맡는 플레이메이커가 각광을 받으며, 스위퍼 시스템은 시대의 저편으로 저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는 다시 3선 4선에서 경기를 풀어줄 선수가 조명을 받으며 AC밀란의 알레산드로 네스타나 FC바르셀로나의 라파엘 마르케스 등이 등장했었습니다. 2010년대 후반에 다시 등장한 3백에서는 납작하게 3백을 구성하거나, 상대팀의 원톱을 가운데 센터백이 맡으면서 오히려 측면 중앙 수비수가 전진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공격적이었던 스위퍼와 달리 양 옆 센터백들보다 깊게 내려가지도 공격 시 오버래핑을 하지도 않았기에 전형적인 스위퍼라 보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빌드업에 관여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축구에서는 3백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하더라도, 개개인에 역할을 부여한 것이 아닌 3명 모두 같은 역할을 맡는 플랫 3백이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스위퍼의 역할이 없어졌다 보아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이를 대신해 생겨난, 스위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역할이 등장했는데요. 바로 ‘볼 플레잉 디펜더’라는 역할입니다. 과거 단순히 수비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던 센터백들이 수비적인 역할 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빌드업을 수행하는 역할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전의 스위퍼만큼 공격 가담에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기존의 센터백들에 비해서는 보다 공격적인 임무를 맡아 공을 미드필드나 공격진영으로 연결합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유벤투스의 레오나르도 보누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마츠 훔멜스, FC바르셀로나의 헤라르드 피케 등이 있습니다. ‘볼 플레잉 디펜더’ 이외에도, 전 칼럼에서 다뤘듯 골키퍼에게도 이 역할을 부여해 공격 상황 시 좀 더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스위퍼 키퍼 또한 이러한 배경 아래서 발전한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파이터(fighter) 유형의 센터백들은 역시 단어 의미 그대로 상대 공격수와 싸워 공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는 센터백을 뜻합니다. ‘파이터’라는 어감에서 느낄 수 있듯,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힘, 속력, 제공권 등 신체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적극적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 특징이기는 하지만 상대를 압박한다고 해서 상대를 압박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센터백은 ‘절대’ 아닙니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압박수비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뒷공간으로 복귀하여 수비에 성공해야 합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과 발롱도르를 거머쥔 이탈리아의 파비오 칸나바로나 09/10 인테르의 트레블 주역인 루시우 등이 대표적인 파이터 유형의 센터백들 입니다.
파이터 유형의 센터백들 중에서 특히 스위퍼가 있을 때 스위퍼와 짝을 이루거나 스위퍼의 양 옆에 위치하는 선수들을 ‘스토퍼’라고 하는데요. 보통 스위퍼보다 앞선 위치에서 공격수들을 압박하고 수비합니다. 스위퍼보다 앞에 위치해서 좋은 활동량을 가지고 상대 공격수들을 압박해야 하기 때문에 스타일을 따져야 한다면 파이터에 가까워서 파이터 유형의 하위에 분류하였는데요. 스위퍼가 없다고 볼 수 있는 현대 축구에서는 스토퍼라는 단어와 구분도 사실 의미가 없긴 합니다.
이렇듯 센터백은 전통적으로 2가지 유형으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현대 축구에 들어서는 앞서 말했던 내용처럼 커맨더와 파이터로 센터백의 부류를 나누는 것의 그 의미가 굉-장히 무색해졌습니다. 축구의 패러다임이 세분화되고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는 점차 그 구분의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인데요. 왜냐하면 좋은 센터백이라면 커맨더 유형과 파이터 유형의 자질들을 모두 갖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센터백은 태클, 가로채기 대인방어 등과 같은 수비 기술은 물론, 속력, 몸싸움, 공중볼 장악과 같은 신체 능력, 상대 진영으로의 정확한 패스를 보낼 수 있는 빌드업 능력 등등 많은 능력을 요구받는 포지션으로 변화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술적인 변화에서는 필요에 따라 전문 센터백이 아니더라도 센터백 자리에 서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3백에서는 4백에서보다 센터백의 숫자가 한 명 더 늘어나서 수비에 대한 부담 혹은 책임이 줄어들기 때문에 전문 센터백이 아니더라도 측면 중앙 수비수 자리에 미드필더나 풀백이 서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아르테타의 아스날에서 왼쪽 측면 수비수인 키어런 티어니가 3-4-3 포메이션에서 왼쪽 중앙 수비수-실제 경기 내에서 센터백처럼 움직임을 가져가지는 않지만 적어도 스타팅 포메이션에서는-로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변화하는 축구 패러다임의 흐름 속에서 센터백도 많은 변화를 겪으며 역할 또한 바뀌어 왔습니다. 센터백이라는 포지션이 또 어떻게 그 역할을 바꿔 나갈지에 대해 앞으로도 주의 깊게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풀백/윙백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할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Written by 문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