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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차 베트남 의류회사 주재원, 사표내겠습니다.

사장님, 저는 히말라야산에 가야할 것 같아요.

by 고탑

미국에서 공부할 학비를 벌기위해 호주에서 2년간 미친듯이 일을 해 돈을 벌었다.

청소, 웨이터, 우유 공장, 세차장 등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고 하루 24시간 중 18시간을 일했다.

새벽 4시에 공장에 출근해서 청소기를 돌릴 때면 너무 졸려워서 청소기를 틀어놓은채로 가만히 서서 잠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 상황을 아는 호주인 매니저가 어이없게 웃으면서 잠을 깨워주었다.

정말 고생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좌절되었고 호주 생활도 끝이 났다.


나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일하는 것이 재밌고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해외 취업을 알아보았고

좋은 기회를 얻어 베트남에서 교육 및 취업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되었다.

약 1년의 교육을 마치고 한국 의류밴더회사의 의류 개발 담당 주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4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동안 베트남의 시골동네에서 근무를 하며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3000명이 넘는 베트남 직원들이 있는 공장에서 현지 직원들과 소통하며 즐거운 기억도 쌓았고,

코로나가 극심하던 시기에 같은 부서의 베트남 직원이 코로나 확정판정을 받으며

베트남 정부에서 부서의 모든 직원을 동네 유치원으로 보내 격리당하기도 했다.

유치원 교실에 텐트를 치고 2주간의 격리 생활을 보냈다.

교실안의 화장실 변기는 아기용이라 무릎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고 당연히 성인 엉덩이 사이즈에 맞지도 않는

작은 크기었다.

에어컨이 없었기에 매일 아침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볼일을 보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현타에 젖었다.


그렇게 강렬한 추억을 만들며 하루하루 베트남 회사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3년이 조금 지났던 어느 날, 출근한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끝날 시간만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게되었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매일 새벽 여섯시에 꾸역꾸역 일어나고, 하루에 절반을 회사에서 보낸다.

그런데 회사에 앉아있는 내 모습은 대충 일을 마무리짓고 빨리 퇴근하기만을 바라는 한심한 사람이었다.

나는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에 20시간을 일 하더라도 좋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정확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성장하고 싶고, 성취하고 싶었다.


상사 몰래 메신저로 친구들과 떠들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퇴사를 결심하고 사표를 냈다.

누구는 30대 중반이면 충분히 다시 시작해도 된다고 했고,

누구는 이제 방황은 그만하고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정진할 때라고 그랬다.

불안하지만 30대 중반에 퇴사를 하게 되었고 세계 여행을 결심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어딘가에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 삶인지 모르겠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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