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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n 01. 2020

겨울나비.10 행운의 열쇠

퇴출 전 위로




회사의 창립 기념이었다. 목 치는 칼바람 뒤에 당근이 상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표창 범위는 이렇다. 일 잘했다고 주는 모범상. 한 10년 열심히 했구나 해서 10년 근속상. 청춘 다 바쳤다 해서 주는 20년 근속상. 상장 한 장과 금 10돈을 준다.

이 회사에 온 지 벌써 10년이니 내 이름도 명단에 올랐다. 봉두난발 어지럽고 숱 많던 머리에 '속알머리' 빠지고 '주변머리' 빠지니 낡은 그림 같은 얼굴에 붙은 표창장인가.

다른 해에는 창립일에 표창 대상자는 5박 6일로 일본을 다녀왔었다. 몇 년 전에 우수 직원으로 포상 받아서 가 본 동경 신주쿠를 한 번 다시 가 볼까 하는 기대는 무너지고 금 10돈의 독약 칠한 당근을 먹어야 한다.

식을 끝내고 왔다. 공로패와 순금 행운의 열쇠를 받았다. 맥빠진 박수가 터지고 사장의 훈시가 있었다. 사장은 축사를 써준 것을 읽지 않고 머릿속 메모장을 보고 말한다.

"변하라. 어려운 시절엔 변해야 산다. 회사 돈을 아껴 써라. 이익 추구가 회사의 목표이다. 철저한 계획하에 아껴 써라. 솔선수범하라. 상사는 상사대로 아랫사람은 아랫사람대로 솔선수범하라."

정작 궁금한 것에 대해 말이 없다. 지금 힘들다, 모두가 고통 분담을 하여야겠다. 그러니 함께 참자. 앞으로 내 생각은 이렇다 하는 말은 없다.

사장은 무슨 복안이 있겠지. 시상식 끝물에 총무차장이 안내하기를 다음 날 아침 근무 시작 전에 과장급 이상과 사장과 허심탄회하게 대화의 시간을 갖겠다고 한다.

직원들 성큼 경계했다. 말이 좋아 대화의 시간이지 할 말 다한 사람이 먼저 총 맞고 나간 사례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다들 입을 본드로 붙이고 시간은 묵묵부답으로 흐르리라.

때로는 천둥벌거숭이가 나타나서 속을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다. 그 벌거숭이가 내가 될지 누가 될지. 금세 사장 총 맞은 그 벌거숭이 시체를 빙빙 도는 하이에나 역할은 남은 자들이 할 것이다. 독약 바른 당근을 먹은 약효를 저마다 느끼면서.

봉급 안 받고 일할 사람?

부장이 부서 직원 20여 명을 앞에 죽 앉혀 놓고 말은 조용하나 은근히 강요를 한다.

"회사가 어렵다는 다 알 거야. 사장이 앞장서서 직원들의 봉급을 얼마 깎자 하는 것도 모양이 우습다. 전 직원들의 봉급을 깎은들 한 달에 1억 정도밖에 안 된다지만 우리도 동참한다는 의견을 모으자. 차 부장은 20%, 대리와 과장은 15%, 주임 이하는 5%로 의견을 정리하자. (부장은 돈 쓸 곳도 많은 데 20%이다. 아이들은 컸지. 학자금을 내야지. 너희가 나보다 돈 쓸 일이 많겠냐? 녀석들아) 상여금은 500% 중에서 100%만 반납하자. 이유 있나? 결의서를 자필로 쓰기다. 의견이 다르면 안 써도 좋지만…. 결의가 기명으로 하는 것을 유념하도록……. 의견이 다른 사람은 다른 의견을 써라. (할 리가 없지)."

한 명 빼고는 다 써냈다. 그 한 명은 신혼여행 중이다.

"어디로 갔지?"

"시드니에서 해수욕하고 있을 겁니다."

"시드니(지금 같은 때에? 은근히 부러워서)???"

"벌써 예약을 해서 갔답니다."

이런 일이 다른 부서에서도 줄줄이 벌어지고 있다. 하루아침에 잘려나가는 것보다 말만은 자율이고 실제는 타율인 봉급 반납이지만 그래도 너 나 없이 어쩌냐. 갈 곳 없이 떠밀려 가기 보다 이게 낫지.


이제 죽기 아니면 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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