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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n 04. 2020

겨울나비. 13 미스 김의 Happy End

사랑에 콩깍지 인생도 콩깍지





서른이 좀 넘었을까?

정장을 단정하게 갖추고  키가 180cm쯤 됨직한 젊은이가 부장 걸음을 세웠다. 명일 지하철역 출구를 막 빠져나오고 있을 때다. 눈이 엄청나게  온다. 앞이 안 보일 지경이다. 퇴근 시간이다. 차를 끌고 갈 자신이 없어 지하철을 타고 온 참이다.

"저는 건축 설계사무실 사람입니다."

(설계사무실? 설계사무실에서 요즘 길거리 수주를 하고 있나? )

부장이 잠시 주춤하는 동안 그는 명함을 준다.

건축사 M.

" 지하철에서 아가씨 두 사람과 함께 계셨지요? "

" 그래서?"

" 그중 한 아가씨에 대해서 좀 알고 싶어서요."

아하, 회사를 나올 때 함께 퇴근하던 김 주임과 동료 여직원을 두고 말 하누나.

그가 말하는 아가씨는 긴 머리 날리며 눈빛 초롱 한 김 주임이다.

" 유감이오. 그 아가씨는 날 받았다오, 5월로."

별 실없는 사내에게 한 방으로 끝나게 할 참으로 부장은 선을 긋는다.

(날은 무슨 날, 참 별난 친구로군.)

"미안, 나는 갑니다."

눈 오는 날에 회사 이런 일로 더 들을 시간이 내게는 없다.

" 죄송합니다만 명함을 얻을 수 있는지요?"

상대가 정중하니 부장이 마다할 수가 없다. 명함을 주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명함을 잘못 준 것 아닌가?

내심 켕겼다.

이 일로 끝난 줄 알았다. 며칠 뒤 전화가 온다.

" 기억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지하철에서... "

" 기억나다마다. "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는 건축의 행정고시라 할 건축사라고 명함에 찍혀 있다. 진짠지 가짠지는 건축사 협회에 알아보면 금세 알 일.

" 거래하는 건설회사는 어디요?"

부장 회사와 거래하는 곳과 이름이 유사해서다.

" 병원 설계를 주로 합니다."

아니었다.

" 토요일에 시간이 어떻겠습니까? 한 번 점심 사러 가겠습니다."

점심때 식당  안 김 주임은 경리부  직원 틈에 섞여 있었다.

" 지하철 얘기 들었지? 내가 볼 땐 성실하게 보였어. "

" 다 들었어요. "

" 인기 많은 김 주임과 못 다니겠다."

그녀가 웃는다.

몇 달이 지났다.

퇴근길을 가면서 김 주임이 말한다. " 부장님과 공무 부장님과 퇴근길에 함께 가는 일도 며칠 안 남았어요. 부장님께서 술 석 잔 사드릴 일이 있어요. "

" 무슨? "


" 저, 결혼 날자 잡았어요. "


" 어허 그래? 축하 축하. 신랑은 누군데? 한동안 파다했던 그 사람? "

" 아네요. 부장님이 중매를 서주셨잖아요. "

" 내가, 언제? "

" 눈 오던 날. 지하철에서 만났던 그 사람요. "

" 아하아아"

부장은 설계 사무소 소장을 단박에 기억했다. 회사까지 찾아왔고, 함께 점심했다.

건축사 청년은 김 주임을 보자마자 콩깍지가 씌웠다.

그는 시간 중에 전화 걸어 김 주임의 귓가에 있었고, 퇴근 때는 회사  문밖 장승이었다.

" 그 사람이 별로예요."

 하면서 김 주임은 먼저 사귀던 사람을 계속 만나는 듯했다.

웬일로 별로라던 사람 대신에 그 지하철 맨과 결혼을?

" 김 주임은 싫다고 했잖아?"

" 남자가 적극적이니까 저도 마음이 흔들린 거지요. 집안 어른 들게 인사를 다하고 양가에서도 다 좋다고 했어요."

" 결혼식은? "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결혼 후 김 주임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부장 휴대폰에 문자가 뜬다.

김 아무개(경리) 본인 별세

신촌 어디 병원

발인 : 언제

연락처 : 010-1234-000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디 회사 모임 회장 아무개


김 아무게는 김 주임이다. 결혼 한 지 2년째다.

신촌 어느 병원 영안실이다.

"무슨 일이오?"

부장은 남편 손을 잡는다. 그의 눈에 초점이 없다.

"부장님 오셨군요. 애 낳다가 그냥 애만 두고 갔습니다. 회사 근무 중에 아주 힘들었다 했지요. 바로 위 경리과장이 자금 횡령하고 잡혀갔었지요. 그 아래 우리 집 사람이었으니 경찰에서 오라 가라 힘들었답니다. 경리 과장 단독 범행으로 아내는 무혐의였어요. 회사를 그냥 다녔어요. 딱히 다른 곳에 갈 곳 없고. 경리 부장이나 중역들이 아꼈으니까요.어디 마음이 편할 리가요. 그 일로 공황 장애와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렸다네요. 하루 일과가 끝날 무렵에는 거의 퇴근길에 집에  가기가 힘들 때가 자주 있었답니다. 택시 타고 퇴근할 형편은 아니었지요. 근처에 사는 동료 직원은 부장 님 두 분뿐이었고요. 그때마다 부장님과 공무 부장님에게 퇴근길 같이 가자고 청을 넣었답니다. 본인도 자주 부장님들 차 타기가 미안해서 택시를 타고 퇴근하기도  했답니다. 두 분께서 싫은 내색 없이 돌봐 주셔서 늘 고마웠답니다. 물론 번거롭고 귀찮으셨겠지요.  본인이 아프니 집안 친척 어른에게 떼쓰듯 응석도 부렸답니다. 자주 이야기했어요. 그런 분들이 없다고요. 부장님, 새삼 제가 감사 말씀드립니다. 저 사람도 지금 부장님을 뵙고 반가워하는 것 같습니다. "


영정 속 김 주임이 활짝 웃고 있다.


그래그래 김 주임은 과장이 사고 치고서 회사 전체가 시끌벅쩔할 때 엄청 힘들어했지.

부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설계 사무실을 하지만 영세 업자예요. 집 사람이 결혼하고서 제 사무실에서 경리와 관리 업무를 맡아서 했지요. 모든 것이 저는 부족했지요. 아내 마음고생은 직장 생활보다 더 심했어요. 퇴근 무렵엔 거의 쓰러질 정도로.  몸이 많이 약해졌어요. 그래도 아이가 생겨 기뻤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작은 건설사 사장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들 결혼식이다.

강남 어디.

부장은 그날 혼주와 손잡고 축하한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부장을 부른다.

" 접니다. 기억하세요? 설계사무소 M입니다. "

김 주임 남편이다.

오늘 혼주와 선후배 사이란다.

그 옆에 한 여인이 서있다.

" 제 집 사람입니다."

순간 부장 눈에는 부인이  김 주임으로 보인다. 착각이다. 그랬으면... 하는 마음.

" 그때 아기는?"

" 잘 컸지요. 스무 살 청년입니다. 아기도 나이를 먹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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