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거울 속에 아버지를 모십니다
먼 길 떠나신 날이 어제인 듯 다가옵니다
아버님 당신께서 현고 신위 쓰셨듯이
저 또한 기일 맞아 아버님 그리워요
붓 들어 아버님 신위 쓰고 나니 뭉클하고
힘들다 어렵다 바람 불던 시절마다
굳세게 오뚝이 인생살이 당신 모습
자식들 가슴속에서 넉넉하신 웃음소리
어른의 제삿날이라 모인 이 자리에
멀리 떠난 손녀와 막내가 이 밤에 없이
손자와 누이가 함께 아버님 부릅니다
부모님 기일에 처음 함께 절하는 아버님의 딸을 지켜주소서
얼마 전 차사고로 생사를 오갈 일을 당하고도
온전한 몸에 감사하며 아버지 아버지를 목메
불렀던 딸을 지켜주소서
누이야
어린 너와 막내는 어리기에 다투고
오라비인 나는 달래다 못하면 아빠보다 무섭게 굴었지.
지나간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며 너는 웃는구나.
무섭게 굴면서 그러지 말아야지
했던 그 시절 내 마음을 읽듯이 그래도 오빠가 좋아하고 말하는구나.
오라비와 동생은 대학 공부 다 맞추었으나
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으로 나서고
월급봉투는 어머니께 드리니 꽃 같은 청춘의 네가
힘든 세월이 아니었더냐.
그러려니 살아라 하던 어머니 말씀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너를 안고 업고 언니처럼 굴던 시절이 어제인 듯하여도
와있는 세월을 보니 너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이며
나이 오십을 넘은 인생의 중년이 되어 있구나.
언니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하나 오라비는 언니 구실이 신통치 못하는구나.
살다 보면 힘들고 너의 의지 가지가 못되고 있으니.
누이야 친정 가듯 너를 이리 와 아버지를 뵙자꾸나
이제 부모 되고 너도 사위 보고 며느리 볼 나이가 되어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술 한 잔 부며 옛 생각이 울음 속에 난다는 마음을
여기서 아버님께 한 잔 술을 올리며 풀려무나
아버님 전 상서
아버님, 오늘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날입니다.
그 날 낮에 아버님을 이미 혀가 굳어 무슨 말이건 힘드셨습니다.
아마도 죽겠다. 이제 떠날 차비를 하여야겠다.
이 답답한 속을 네 놈 자식들이 무엇 알게 뭐냐.
힘든 말씀이었을 것을 아버님과 어머님을 뵈려 함께 갔던 저희 형제는 한 동안 편찮으셨던 아버님의 모습이려니 했을 뿐입니다.
새벽에 어머님께서 숨 가쁘게 아버님께서 이상하시다 하셨을 때는 이미 멀리 떠나신 뒤이었습니다.
세상의 아버님들께서 어느 자식인들 곱게 키우지 않으셨겠습니까.
아버님께서 떠나셨을 때 서럽다기보다 안심했고 평안한 마음을 저는 느꼈습니다. 아버님의 평안한 미소를 보며 병고에 시달리시는 삶에 고통을 겪으시느니 떠나시는 먼 길 나그네 길이 더 좋다고 그때는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몸은 가셨다 하나 당신의 정신은 아니 가셨습니다.
이제 아버님의 제삿날에 이제 저도 흰머리 늘고 제 모습 속에서 아버님의 모습을 봅니다.
아버님께서 지극 정성을 기울이시어도 못다 느낀 감정을 이제 제 아들에게 베풀며 아들이 철없다 생각할 때마다 아버지께서 저를 보며 느끼셨을 마음을 이제야 헤아립니다.
제삿날에는 늘 당신의 며느리는 아버님을 생각하는 마음에 제수를 차립니다.
제 삶의 날들이 더해갈수록 아버님 곁으로 다가가는 시간이 가까워집니다.
아버님께서 아들들에게 바랐던 일들을 저는 과연 이루 어갔는가를 새삼 생각합니다.
아버님을 생각하면 매일 먹을 갈아 신문지에 이런 글을 붓으로 쓰시던 모습이 바로 지금도 눈앞에 떠오릅니다.
" 천지신명이시여. 굽어살펴주시옵소서. 남이 나를 괴롭히고 모함하는 일이 있다 하여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참되고 올바르게 살 수 있는 진 군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세상의 누가 해코지하는 일들이 어찌 그리 있으셨기에 매일 주문을 쓰듯 그리 하셨습니까.
살다 보면 길하다고 좋아할 이 아니며 흉하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기에 아버님 당신께서는 그런 글을 쓰시면서 세상의 한을 풀어가셨습니까.
아버님. 삶이 가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제사상에 아버님께 절을 올리면서 지난날 아버님을 모시고 조상님들께 절을 드리던 일이 생각나며 그때가 비록 시간으로는 한참이건만 방금인 듯합니다.
아버님이 그립습니다.
그립기에 아버님은 제 가슴에 계십니다.
그리운 분이시여
당신을 떠나셨지만 늘 이렇게 그리움 속에 머물러 계십니다.
"아버지."
부르면 목메실 아버님. 저도 울고 아버님도 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