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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n 17. 2020

겨울나비. 20 기요틴

나란히 나란히






나는 재건축 조합에 와 있다. 그때 걸려온 전화.

최 과장이다.

"차장 이상 바로 들어오랍니다. 오 이사 지시입니다."

순간, 나는 때가 왔구나 하고 느꼈다.

차장 이상을 모아놓고 떨어진 말은 이렇다.


첫째, 명퇴 신청을 받는다.

사원에서 부장까지이다.

이번 대상은 본사 관리직 중 20명이다. 인원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부서장에게 위임해서 뽑겠다. 이번에 사표를 내면 3개월치 급여를 위로금 조로 준다.


둘째, 부서는 어찌 되나?

주택 사업부와 영업부를 합친다. 개발 1. 2부를 합친다. 부장 넷 중 둘은 날아간다.

나는 개발 2 부장이며 부장 중에서 최고 선임자고 퇴출 0순위이다. 애들에게 돈 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고개 숙인 아버지들이 길바닥에서 나다니다 서울역 대기실에서 새우잠 자는 이들도 있다.

나는 따뜻한 밥 먹고 따뜻한 잠자리에서 편하게 오늘 이 시간까지 잘 살았다.

남들 하는 고생, 남들 맞는 매를 나도 맞을 때가 되었다.


본동과 상도동 재개발 사업 담당 맹 차장이 내게 왔다.

"부장님, 지금 사표 낼까요?"

하는 말이 진담이다.

사표 내고 퇴직금 받겠다 하던 그에게 나는

“나는 결정했다. ”

나는 부서 직원 전원을 모아놓고 명퇴 신청에 대하여 옮겼다.

"명퇴 대상은 직원서부터 부장까지이다. 잘 생각해서 각자의 진로를 결정하자."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부장들이 모였다. 주택 사업부 이 부장, 개발 1부 김 부장, 개발 2부의 나.


이 부장이

" 사표 내라는 말을 듣고 점심을 아내를 불러 함께 했지요. 아내가 아직 직장 생활을 하니까 자기가 먹여 살려야겠다고 합디다.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내일 깊이 있게 이야기해야지요. 우리 부서 직원들의 사표는 여직원부터 나까지 다 써서 내기로 했습니다."


김 부장이

"나는 그저께 말했지요. 무슨 말끝에 이제 때가 된 모양이라 하니 뭐 먹고 사느냐 합디다 마누라가. 먼저 그만둔 은 부장처럼 고기 장사나 하자고 했지요."


나는

"일요일 밤까지 참으려다가 안 되겠다 해서 말을 했더니 집사람은 다리가 풀린다더군. 어차피 당할 일이지만 충격이 온 거지."


사실 아내는

"자기 사표 내야 해? 안내면 안 돼?"

떼쓰듯 했지만, 사업부 내의 다섯 명의 부장 중 세 명이 그만두어야 한다.


우리 부서 과장 이상들을 모았다. 차장 하나 과장 넷이다.

"경리부와 주택 사업부는 일괄 사표를 내고 처분을 기다리겠다는 거야. 여러분 생각은?"

저마다 침묵, 그리고 하는 말이 함께 내면 권리 주장을 못 하겠다는 것이다.

"각자 사태를 잘 지켜보고 내도록. 나와 맹 차장은 이제 미련 버렸네."

나는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명함 철 정리를 한다. 명함 주인공들은 이미 직장에서 거의 반이 사라져 갔다.

나는 하나하나 넘기며 마치 낙엽처럼 휴지통에다 떨어트린다.

그리고 아직 남은 이들 명함은 몇 장. 책상 서랍 속에 있는 업무와 관계없는 컴퓨터 책 여러 권, 업무 일지 묶음과 이탈리아제 올리버트 한글 타자기와 한글 워드 전용기 르모 워드를 챙긴다.

그것들도 제법 짐이 된다. 아직은 짐 꾸리는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 주 몇몇 빈자리가 보일 것이고 일상은 물결 속에 사라지리라. 떠난 자들에 대한 기억을 지워갈 것이다.

종이 상자를 얻어와서 짐 싸는 내 모습을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우리도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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